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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현] 화려함보단 아름다움을 찾아서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2-06-22

<후궁: 제왕의 첩> 프로덕션 디자이너 조근현

채움보다 비움으로써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후궁: 제왕의 첩>(이하 <후궁>)의 궁궐 안 주요 공간을 이렇게 한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절제미가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영화적인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예산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미니멀리즘도 아니다. <형사 Duelist> <음란서생> 등 여러 사극영화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에서 공간을 만들어온 조근현 미술감독은 오랜 파트너 조상경 의상감독과 함께 철저한 고증을 거쳐 조선 궁궐의 진짜 모습을 펼쳐냈다(그는 인터뷰 전부터 시작할 때까지 입이 닳도록 “내가 한 건 없다. <후궁>은 전부 조상경 의상감독의 공”이라 치켜세웠다). 평일 오전, 고요한 경희궁에서 사진 찍기를 꺼려하던 조근현 미술감독을 데리고 일단 사진부터 찍었다.

-사진 찍는 거 싫어하나. =내가 감독이나 배우도 아니고….

-서울 시내에 있는 그 많은 궁궐 중 경희궁에서 만나자고 한 건 왜인가. =사무실이 있는 상암동 가는 길에 있으니까. 그런데 왜 보자고 했나. 이번에는 전부 조상경이 다 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아서. =내가 이 영화에서 한 건 딱 하나다. 조상경의 의상에 맞춘 것뿐이다.

-본인 인터뷰인데, 자꾸 조상경 의상감독 얘기만 한다. =입버릇처럼 이런 얘길 하곤 했다. 언젠가 사극 한편, SF영화 한편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후궁>을 선택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김대승 감독. <번지점프를 하다>(2001)의 미덕은 ‘충격’이었다. 언젠가 그와 함께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김대승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혈의 누> 같은 영화라면 안 한다. 대신 파격과 관련한 영화미술을 원한다면 하겠다”고 말했다. 고증만 제대로 해도 새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과거 작업했던 사극영화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김대승 감독에게 “대단히 SF적이거나 퓨전사극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군더더기를 빼겠다”고 했다.

-또 다른 이유는 역시 조상경 의상감독인가. =<후궁>의 미술, 의상, 분장, 세트, 소품의 전체적인 컨셉은 ‘절제와 압축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었다. 가령, 장신구 10개를 벽에 장식한다고 치자. 보통 사람들은 장신구를 고르게 분포해서 벽에 박아놓을 거다. 그러나 이 영화의 컨셉을 따른다면 10개의 장신구를 한곳에 몰아 배치한다. 그러면 여백의 미도, 10개가 한곳에 모인 장신구 모두 즐길 수 있다. 그게 절제미이자 이 영화의 컨셉이다. 다른 사극영화에서 흔히 볼 법한 초와 병풍이 하나도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람의 앉은키보다 낮은 가구를 배치했고. 모든 게 인물을 강조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조)상경씨가 이 작품을 해야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미술의 상당 부분은 의상을 먼저 본 뒤 결정됐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벽을 창호지가 아닌 나무로 처리했다. 벽을 처리할 때 선택할 수 있는 후보는 단청, 회벽, 그림, 나무이다. 그런데 단청은 실외에 쓰이는 거고, 회벽은 색깔이 흰색이라 영화 촬영에 부적합하다(조명이 흰색 벽에 반사되면 사람의 피부 톤이 제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다가 (조)상경씨의 의상 컨셉 회의를 듣고 난 뒤 나무 벽으로 결정했다. 대비전, 침전, 화연(조여정)의 처소 등 영화 속 주요 공간에 제각기 다른 나무를 썼다. 색이 짙고 나이테가 큼직큼직한 나무는 대비전의 벽에, 색이 밝고 결이 도끼에 찍힌 자국이 있는 나무는 화연의 처소에 썼다. 그러니까 벽에 쓰인 나무는 인물의 성격을 따른 것이다.

-성원대군(김동욱)과 대비(박지영)가 조회를 하던 정전(正殿)은 어떻게 디자인했나. =경복궁 근정전은 정사각형이다. 근정전 안에는 왕만 앉아 있고, 밖인 마당에는 신료(臣僚)가 도열해 앉는다. 다만, 근정전의 마당은 임금의 즉위식, 대례 같은 행사 때만 쓰인다. 반면 정치나 회의는 사정전(思政殿)에서 열린다. 사정전에서는 왕은 마룻바닥에, 신료는 돌바닥에 앉는다. 영화 속 정전은 근정전과 사정전 두 공간의 개념을 합친 공간이다. 왕은 단상이 높은 곳에 있고, 신료는 돌바닥에 앉음으로써 왕과 신료의 영역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게 했다. 동시에 왕과 신료가 한 공간에 앉을 수 있게 했고.

-실제 왕의 침전은 영화 속 그것처럼 크기가 작았나. =왕 한명 누울 크기였다. 사방은 창호지로 된 문이었고. 그 밖에서 신하들이 밤새도록 왕을 지킨다. 그들 앞에는 또 창호지로 된 문이 있고. 문 밖에는 또 다른 신하들이 지키고 있다. 그런데 TV 사극드라마를 보면 왕의 침전에 가구, 장신구, 그림, 도자기 등 이것저것 가득 채워져 있잖나. 그건 아무 생각 없이 꾸민 거다. 실제 왕의 침전에는 아무것도 없다. 왕이니까. ‘물 갖고 와라’, ‘책 가지고 와라’ 그러면 내시가 다 갖다주잖아. 그걸 왜 절대 권력자인 왕이 직접 해? 왕의 방에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칼 하나가 있겠지. 최악의 경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니까. 영화 속 성원대군의 방에 칼만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화연의 처소에 소품이 많은 이유는 역시 그의 권력이 약해졌기 때문인가. =중전에서 후궁으로 밀려나면서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까. 만약 영화에서 중전 화연의 공간이 있었더라면 왕의 침전과 똑같이 디자인했을 거다. 대비전이 그렇잖아. 그곳에는 서예 도구 하나밖에 없다.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게 하나 있었다. 대비전에서 대비가 성원대군을 앞에 앉혀놓고 한지에 ‘없을 무(無)’자를 쓴다. 그 ‘무’는 무념무상할 때의 ‘무’가 아닌 그야말로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권력을 없애겠다는 대비의 욕망을 뜻한다. 물론 마지막 네획을 미처 못 쓰지만…. 제법 역설적인 의미인데, 김대승 감독의 대단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원래 내가 생각한 대비전의 그림은 대비가 커다란 청자를 가만히 감상하는 풍경이었다.

-섹스 신이 이루어지는 합궁방은 팔각형인데 연극무대 같더라. 촬영과 조명을 위해 세 조각으로 세트를 나눠 제작했다고. =합궁방은 섹스 신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공간이다. 고증이 전혀 안 들어갔고. 의미가 있는 방은 아니다. 밀궁 역시 실제 궁 안에 없는 공간인데, 세트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높이도 10m였고. 양쪽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구조였는데 영화에는 실제 규모의 반도 안 찍혔다.

-세트 대부분의 제작을 크랭크인을 불과 한달 앞두고 들어갔다고. =미술을 맡기로 한 순간부터 매일 김대승 감독과 시나리오에 관한 대화만 했다. 주변 사람들은 “왜 세트를 제작 안 하냐”고 했는데, 아직 시나리오와 인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무슨 공간을 디자인하고 세트를 제작한단 말인가. 크랭크인을 한달 앞두고 의상 컬러, 질감, 피부톤 등 의상과 분장 컨셉이 최종적으로 나왔을 때 공간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인물을 이해하면 공간 조감도를 그리는 건 하루만 밤새우면 다 완성된다. 세트 역시 금방 제작되고. 그게 맞는 방법이다.

-예전부터 그렇게 작업했나. =예전에는 공간 디자인부터 먼저 했다. 그렇게 작업하기 시작한 건 최호 감독의 <고고70> 때부터였다. 연출자와 밀접하게 일을 하면 할수록 프로덕션 디자인의 퀄리티가 좋아진다는 믿음도 그때 생겼다.

-예산은 안 부족했나. =현재 충무로 사극영화 제작 환경이 너무 안 좋다. 중국에는 자금성 세트는 물론이고 시대별 의상이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충무로는 매번 만들고, 버린다. 조선의 이야기가 얼마나 무궁무진한데, 경복궁 세트 하나 없다는 건 문제가 있다. 그래서 사극영화팀은 매번 드라마 사극 세트장 빌려달라고 조르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렇게 해서 완성하면 제작자들은 “거봐, 30억, 40억원 가지고도 만들 수 있잖아” 그러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이걸 신경써야 한다. 만날 예산이 없다고 하는데, 필요하면 예산을 만들어서라도 환경을 조성해야지.

-작업이 끝나면 작업과 관련한 자료, 데이터를 전부 삭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이웨이> 작업이 끝났을 때 720기가바이트에 달하는 <마이웨이> 프로덕션 디자인 자료를 클릭 한방으로 삭제했다. 그래서 어떤 인터뷰도 안 했고, 못했다. 데이터가 없으니까. 아까운 걸 왜 지우냐고? 이미 한 작업의 데이터는 그 영화의 자료이기 때문이다. 새로 맡게 될 영화는 그 영화에 맞춰서 새롭게 준비하는 게 맞다. 조상경이나 내 필모그래피를 보면 1/3이 입봉감독의 작품이다. 그렇게 도전하는 거다. 경력이 있는 감독과 신인감독 중에서 고르라면 나나 조상경은 신인감독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왜? 경력이 있는 감독과 함께하면 우리는 그냥 부속품밖에 안된다. 물론 아닌 감독도 있지만. 반면 신인감독과 함께하면 작품을 좀더 창의적으로 작업할 수 있다. 젊은 감독이 많이 배출돼야 산업이 건강해진다. 우리는 우리 파트에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그걸 고민하고 있다.

-차기작은 강풀 원작의 <26년>이다. 미술감독이 아니라 직접 연출한다고. =인터뷰 오기 전, 제작사인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님께 여쭤봤다. “분명히 <26년>에 대해 물어볼 텐데 어떻게 대답해야 될까요?”라고. “그냥 조근현이 연출하는 게 맞다”까지만 얘기하라더라.

-감독으로서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한번 꾸려보니 어떤가. =촬영이나 미술처럼 연출과 밀접한 파트의 사람이 연출을 하는 건 다른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해보니까 미술감독과 연출은 또 다르더라. 시선이 바뀌더라고.

-시간이 지나면 당신의 필모그래피는 <후궁>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의 사극영화들이 천박한 화려함을 경쟁적으로 추구한 것 같다. 그게 예쁠 순 있겠지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사극에 참여한 몇몇 미술감독이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았다. <형사 Duelist> <음란서생> 등 사극을 통해 주목을 받은 입장에서 이래저래 후배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끼친 게 일부 있구나 싶었다. 이 영화를 통해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은 마음이 컸다. 뭘 많이 채우는 것보다 외려 들어냈을 때가 훨씬 더 세련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의미가 아닌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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