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트 자캥 감독은 1974년에 실비아 크리스텔의 <엠마누엘>을, 이듬해에 <O 이야기>를 만들었다. <O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르네의 사생활>이라고도 알려졌는데, O는 여자주인공이고 르네는 그녀의 애인이니 제목의 차이가 벌려놓은 틈이 어딘가 의미심장하다. 이 장르의 영화 태반이 남자 입장에서 여자를 대상화하는데, 만드는 쪽이나 소비하는 쪽이나 전통적으로 남자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네 집에 갔더니 친구는 없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여간호사가…. 스토리는 필요없고 몸만 있으면 되는 어떤 것.
<O 이야기>는 1954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는데, 레 되 마고상을 받았지만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폴린 레아주라는 작가 이름은 필명이었고, 작가가 죽기 얼마 전에 진짜 정체를 밝혔다. 그전까지 이 책의 필자는 남자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는데, 책의 내용이 잔인하리만치 여성을 대상화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애인이 O를 데리고 몽수리 공원의 한번도 가보지 않은 구역을 산책한다”로 시작해 O가 가학적 성행위의 대상이 되고 그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익숙해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나간다. 폴린 레아주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유력한 필자로 지목되었던 인물은 장 폴랑이었다. 그는 <O 이야기>의 서문 ‘노예로서의 행복’(후일 나인 인치 네일스의 노래 제목으로도 쓰였다)을 썼고, 사드 후작의 글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진 문인이었다. 그는 여자가 사드 후작 같은 글을 쓸 수는 없다고 연인이었던 도미니크 오리에게 말했다. 도미니크 오리라는 이름 역시 필명으로 본명은 안느 데클로스인데, 폴랑은 프랑스의 문예지 <누벨 르뷔 프랑세즈>의 편집장이자 비평가였고 데클로스는 그 아래서 일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20살 넘게 나이차가 났고, 폴랑은 기혼자였다. 여튼, 안느 데클로스는 연인의 말이 틀렸음을 영상처럼 묘사적이고 지극히 사도마조히즘적인 소설로 증명했다. 엄청난 성공이 뒤따랐다. <엠마누엘>을 쓴 에마뉘엘 아르상은 <O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읽힌 프랑스 문학이다.
<O 이야기>가 여자가 쓴 책이라고 생각하면 더 당혹스럽다. 애인의 손에 이끌려 간 낯선 곳에서 옷을 다 벗고 채찍질을 당하고 전시당한 뒤 그의 앞에서 낯선 남자들과… 로 이어지는데, O는 끊임없이 애인 르네(나중에는 스티븐 경)의 사랑을 구한다. 그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길 뿐만 아니라 결국은 그 안에서 쾌락을 찾아낸다. 주인공을 부르는 O는 물건(objet) 혹은 구멍(orifice)의 암시라는 말이 터무니없게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고 고백할 때 감히 상상해본 적조차 없는 가학행위가 이어진다. 이 소설을 데클로스는 연인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로 규정했다. 자기 해체에 이르는 완전한 복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