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상전벽해의 이면
문석 2012-06-11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은 몇년 전만 해도 작은 연립주택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평온한 동네였다. 그런데 뉴타운 계획이 추진되면서 순식간에 거대한 아파트 숲이 돼버렸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철거라는 과정이 있었다. 이곳의 철거는 떠들썩하지도 않았지만 조용하지도 않았다. 수시로 철거민대책위원회와 이들을 지원하는 전국철거민연합의 까만색 봉고차가 투쟁가와 구호를 방송하며 돌아다녔고 근처 사거리에서는 때때로 작은 집회와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모든 일들을 무심하게 지나쳤다. 얼마 전까지도 이 네모나고 딱딱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아이 씨X, 전망이 가로막혔잖아’이거나 ‘아이 X발, 집값 떨어지겠네’ 같은 것 따위였다.

<두 개의 문>은 그런 소시민적인 생각을 난타하는 영화다. 2009년 1월20일 용산 재개발지구의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사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그런 안일한 사고만이 아니라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공권력의 존재의의와 이명박 정부의 폭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얼핏 보기에 <두 개의 문>은 매우 냉정하고 이성적인 다큐멘터리다.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라면 권력에 의해 가해자로 낙인찍힌 용산참사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이야기하겠지만 이 영화는 칼라TV, 사자후TV의 현장 영상뿐 아니라 경찰의 채증영상까지 동원하며 경찰의 무전, 법정 증언을 녹취해 그대로 들려주고 심지어 경찰관의 진술서를 재연해 그날의 참극을 재구성한다. 여기에 당시 대책위원회 관계자, 변호사, 기자의 증언을 덧붙여 객관적인 ‘팩트’에 방향성을 부여한다. 감성보다 이성에 호소한다고 해서 감흥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절망감과 무력감과 짜증을 느꼈다. 결국 재판에서 철거민들은 실형을, 경찰 관계자는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피가 거꾸로 솟았고 분노했고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 사건을 통해 공권력과 자본이 한몸임을 새삼 깨닫게 된 까닭이다.

이 다큐에 따르면 철거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던 철거민뿐 아니라 무턱댄 진압 명령에 우왕좌왕하다 큰 피해를 입은 경찰 또한 희생자다. 촛불정국에 데여 ‘무관용 정책’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와 경찰 수뇌부가 주범이란 얘기다. 사건 수사를 지휘한 검찰도 공범이다. 이 다큐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황금빛 꿈을 꾸며 용산 재개발을 재촉한 토건 자본은 배후세력일 것이다. 멀쩡히 살고 있는 사람을 내쫓고 그 자리에 대형건물을 세운 뒤 값을 뻥튀기해 이윤을 축적하는 자본의 욕망이야말로 이 비극의 근원이다. 그러니 용산참사는 언제 어디서든 또 벌어질 수 있다. “희생된 철거민 농성자의 목숨도 우리 동료도 사랑하는 우리 국민입니다”라고 진압에 참여한 한 경찰은 진술서에 적었지만 그들의 간부, 정권의 실세, 자본의 수뇌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터무니없는 보상금을 받고 삶의 터전을 빼앗겼을 우리 동네 주민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하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