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도 있고 뉴욕도 있지만, 마놀로는 없다.” <뉴욕타임스>가 <HBO>의 새 코미디 <걸스>에 내린 촌평이다. 뉴욕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4명의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걸스>를 이야기할 때 백이면 백 언급되는 <섹스&시티>와의 비교를, 쇼의 크리에이터이자 작가이고 때론 메가폰도 잡는, 주인공 한나 역의 리나 던햄은 쿨하게 받아들인다. “<섹스&시티> 없이는 <걸스>도 없었다.” 그러니 비교로 시작하자. <섹스&시티>가 사회적으로 안정된 30대 중반의 여자들이 남자와 패션, 행복을 추구하는 일상을 그렸다면, <걸스>는 섹스를 포함한 모든 것이 불안정한 20대 초·중반을 중심에 놓았다. 배경이 맨해튼이 아니라 브루클린인 것도 다른 점. 공통점도 있다. 나쁜 남자와의 나쁜 섹스가 등장한다는 것. 하지만 나빠서 웃긴 섹스가 아니라, 가장 친밀한 행위를 통해서도 위로받을 수 없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지기에, 나빠서 슬픈 섹스는 씁쓸하게 남는다. <걸스>의 주인공들은 여자이면서 동시에 소녀이기에 두 세대의 약점을 동시에 가진다. 이 약점들을 드라마를 통해 그려내는 방식이 상당히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재미있고, 같은 이유로 짜증난다.
올해 25살인 리나 던햄은 2010년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필름페스티벌에 출품했던 <Tiny Furniture>(극영화부문 최우수상 수상)로 이름을 알렸다. <HBO>는 그에게 만나자고 청했고, 그녀는 당시에는 한 글자도 쓰여지지 않았던, <걸스>의 컨셉을 이야기했다. “내가 TV에서 보고 싶은 쇼는 내 친구들의 이야기예요. 우리는 제대로 된 직업이 없어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죠. 만족스럽지 못한 섹스를 하지만 나름대로 페미니스트예요.” 워킹 타이틀조차 제대로 없었던 이 컨셉은 그 뒤 주드 애파토우를 제작자로 영입하면서 날개를 달았고, 쇼로 만들어졌다. 쇼의 제목도 애파토우가 “그냥 <걸스>라고 하는 건 어때?”라고 해서 붙여졌다.
<걸스>의 첫 에피소드는 무급인턴으로 일하는 한나의 부모가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섹스&시티>를 보고 자라 뉴욕을 맛본 한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친구들은 나름의 충고를 하지만 각자 필사적인 발버둥 속에 살기는 마찬가지다. 착한 남자친구가 못마땅한 마르니, 성 경험이 없어 걱정인 쇼샤나, 삐딱한 보헤미안인 제사 등이 그렇다. <걸스>가 <섹스&시티>의 뒤를 따른 다른 드라마들과 구별되는 점은 캐릭터를 보여주는 솔직한 방식일 것이다. 미드 속 여자들이 캐릭터의 나이와 상관없이 바비인형 같은 신체이미지로 포장된 것과는 다르게 <걸스> 속 캐릭터들은 좀더 현실에 가깝도록 하나하나 벼려졌다. 옷을 벗으면 감춰지지 않는 한나의 뱃살은 섹스 중에 희화화되고, 친구의 남자친구가 마뜩잖은 여자친구들 사이의 시기와 다툼도 그려진다. 그런데 그 감정은 오직 당사자에게만 드라마틱하다. 그렇기에 <걸스>에서 자기 반영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또 연기하는 리나 던햄의 존재는 눈에 띈다. 혹시 <걸스>의 자조적인 코드가 맘에 안 들더라도 던햄의 이름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SNS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던햄의 존재는 접근성이 높다. 던햄은 인스타그램에 스타킹을 갈아 신는 셀카를 포스팅하고, 트위터에서는 살다시피한다. SNS 속 던햄과 <걸스> 속 한나는 상당히 닮아 있지만, 그들이 리나 던햄의 전부는 아니다. <걸스>의 시즌1이 채 끝나지 않았는데도 시즌2가 기다려지는 건 이 총기발랄한 소녀가 어떤 여자로 성장할지 궁금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