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찌질할 순 없다. 입봉준비만 4년차인 예비감독 임진수(송삼동)와 건달전문 단역배우 김태욱(김정태)의 부산국제영화제 나들이가 그렇다. 자격지심과 성욕을 달랠 길 없어 자조와 발악 사이를 오가는 그들은 ‘완전 진상’이다. 그게 다였다면 <슈퍼스타>는 어느 무명 영화인의 우울한 자기 고백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임진순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다큐와 픽션으로 엮은 체로 거르고 거기에 적량의 웃음이라는 양념을 쳤다. 그렇게 해서 도움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키득거리며 한술 뜰 수 있는 영화상이 차려졌다.
-데뷔작으로 자전적 영화를 선택했다. =상업영화 입봉준비를 8년 넘게 했다. 지치더라. 아무 간섭 없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6, 7년 전에 정태랑 둘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놀러간 적이 있다. 그때 두 번째로 준비한 영화가 ‘엎어’졌는데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정태가 그러더라. 우리 이야기만 해도 코미디가 꽤 나온다. 그걸로 작게 한번 만들어봐라. 그게 출발점이 됐다.
-나름 배우진이 화려하다. =정태는 조연출 시절에 만나 막역한 사이가 됐다. 정태도 부산에서 연고 없이 서울에 올라와 건달 역을 전전할 때였는데, 피차 고달픈 처지여서 금방 친해졌다. 촬영 들어간 2010년에는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데도 선뜻 나서줬다. 삼동이는 <낮술>에서 인상 깊게 봤었는데 그 캐릭터와 이 영화 사이에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캐스팅했다. 나머지 분들은 눈물의 사연이 담긴 편지로 부탁을…. (웃음)
-대부분 장면을 게릴라로 찍었다고. =영화제 파티 장면은 콘티도 없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배우들이 알아서 움직여주면 정신없이 따라다니는 식이었다. 영화제쪽에 간신히 허락받아 찍었는데 하도 휘젓고 다니니까 지켜보던 담당자가 점점 사색이 되더라. 그런가 하면 서면에서 촬영할 때는 ‘도루코’(<친구>에서 김정태가 맡았던 조직원 역.-편집자)가 떴다는 소문이 돌아서 계속 옮겨다니느라 고생했다.
-돈 없이 영화 찍는 건 민폐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영화로 민폐를 끼친 분들에게 고맙고 죄송한 마음을 표현한 거다. 상업영화였다면 민폐를 끼치더라도 보수를 드리면서 끼쳤을 텐데, 저예산이라 친분에 기대거나 취지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 800만원 빼고 나머지 제작비는 지인들한테 ‘뜯어낸’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다들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셔서 한국영화계가 아직 따뜻한 곳이라는 믿음을 얻었다. (웃음) 도와주신 분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실지가 제일 궁금하고 걱정된다.
-우리나라 독립영화는 왜 하나같이 다 우울하냐는 대사도 나온다. =상업영화에도 다양성이 부족하지만 독립영화에도 다양성이 부족한 것 같다. 현실이 우울하다보니 우울한 영화도 있어야겠지만 내 영화는 가벼웠으면 했다. 실제로 정태랑 부산에 갔을 때도 전반적으로는 우울했지만 웃기는 일도 많았다. 그렇다고 상업영화 수준으로까지 코미디를 극대화하고 싶진 않았고 중간을 찾으려 했다.
-이한철의 <슈퍼스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우울하게 부르자면 정말 한없이 우울하게 부를 수 있는 가사의 노래인데도 희망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이 좋았다. 이 영화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목도 반어법으로 어울렸고. 처음부터 이 영화의 주제곡으로 생각해뒀다. 저작권 문제가 걸렸는데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신기하게도 이 영화 만들면서는 문제가 생기면 대책도 생기더라. 상업영화 준비할 때는 죽어라 해도 안되더니. (웃음)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감회가 어떤가. =내 자신에게 고맙다. 그동안 열심히 버텨줬구나 싶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뜻깊은 작업이었다.
-데뷔를 못하고 있는 다른 감독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방법 같나.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영화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단, 한번의 토닥토닥, 딱 그 정도면 좋겠다. 막연한 희망을 던져주고 싶지는 않다. 희망고문이 제일 나쁘다는 건 너무 잘 아니까.
-차기작은 상업영화인가. =최소한의 공간에서 알차게 펼쳐지는 액션물을 준비 중이다. 한국판 <다이 하드> 같은. 그렇다고 엄청난 블록버스터를 꿈꾸는 건 아니고 톤앤드매너가 그럴 거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