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무렵 나는 과 동기였던 정유신과 학교 앞 주점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모인 자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내게 이러저러한 위로의 말을 던지고 있었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3년간 사귀던 여자와 헤어진 내게 그가 던지는 위로의 말이 들어올 리 없었다. 하나 어쨌거나 열심히 이런저런 위로를 하려고 애쓰는 그가 참 고마웠다.
그의 목소리는 학교 등굣길 방송에서 늘 흘러나왔다. 대학 방송국 DJ였던 그가 015B의 노래를 소개할 때면 난 한없이 따스한 봄 햇살을 맞이하며 캠퍼스를 오르는 순간이 참 행복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행복감이 기억이 날 정도로, 그 순간은 내 삶의 중요한 스틸컷 중 하나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던 어제 새벽 3시경 그에게서 트위터로 멘션이 날아왔다. “안 자고 뭐 하냐? 졸리지 않으면 와서 타파 좀 도와라!”
그는 현재 YTN 해직기자다. 아마 노종면 YTN 전 노조위원장의 요청으로 ‘뉴스타파’ 제작을 돕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짓궂은 생각에 “자고 있음. 진짜임”이라고 농담 어린 답을 보냈는데, 그 짓궂음이 영 흥이 나질 않았다. 학교 등굣길 방송에서 흘러나왔던 그 감미로운 정유신의 목소리, 그 따스한 봄 햇살의 기억은 이미 ‘해직’이라고 하는 두 글자로 덮여 있었다.
돌발영상의 제작진이기도 했던 정유신 기자. 이제 그가 해직된 지 얼마나 됐는지조차 모르겠다. 그저 너무 오래됐다는 것뿐. 그리고 지금 그는 해직기자들의 상징이 된 뉴스타파 제작진이 되어 있다.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이 코끝에서 멈춘다. 동기들보다 두살이나 많았지만 결코 꼰대스럽지 않은, 참으로 쿨하던 사람이었다. 이른바 운동권도 아니었다. 그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은 그만이 아니다. 언론사 입사시험 준비 시절 감성 가득한 글로 늘 스터디원들의 부러움을 산 사람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스터디원 중에서 가장 먼저 합격 통지를 받고 MBC에 입사한 그녀가 며칠 전 멘션을 보내왔다. “잘 지내시나요? 10년 만입니다. ^^”
MBC 김수진 기자. 반가움에 찾아들어간 그녀의 프로필엔 “MBC 기자, 파업 중”이라고 간단하게 적혀 있다. 뭔가 어색하고 낯설다. 너무 반갑다고 답 멘션을 보냈지만 역시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이 코끝에 다시 걸린다.
언젠가부터 외부 특강을 가면 나는 스스로를 “EBS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 김진혁입니다”라고 소개한다. 사람들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린다. 하나 꼭 웃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다시 정유신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뉴스타파’로 나를 위로한다. 김수진은 내게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러니 그렇게 소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