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인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잠깐, 정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인이 한 말도 아니다. 프랑스의 파리 정치대학과 파리 공립경영대학원 MBA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프레데릭 마르텔이 쓴 <메인스트림>은 오늘날 국경을 넘어 소비되는 수많은 문화 ‘상품’, 하나같이 ‘미국과 같은’ 메인스트림 문화를 만들고자 애쓰는 이들에 관한 방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였다. 미국 할리우드의 사례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해 발리우드로, 아프리카로, 그리고 아랍세계의 메인스트림으로 등극한 알자지라로 확장되는 화두 그 자체다. 한국은 여기서 한류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드라마’의 성공사례를 통해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들여다본다. 566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한국이 중점적으로 거론되는 대목은 20여쪽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서 한국 대중문화산업의 성공 전략과 스크린쿼터는 제3자의 눈으로 분석된다. 예컨대 놀랄 정도로 젊은 배우들에 대한 경이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지만 스크린쿼터 축소의 내막에 관해서라면 이 책을 읽다가 놀라는 이도 있으리라. “한국측은 자기네 전자 산업과 농업의 사활이 걸린 이 협정의 체결을 절대적으로 원했고, 그래서 영화를 희생시키기로 한 겁니다. 그들은 영화보다 삼성을 택한 거죠. 이건 한국의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대목에서 가치판단을 하고 고개를 갸웃하거나 호불호를 가르며 고소를 머금거나 미간을 찌푸릴 수도 있지만, <메인스트림>은 현재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데이터와 통찰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미국(영화산업)이 중국에 대대적으로 패배한 20여년간의 시간을 집요하지만 재치있게 따라잡는 제9장 ‘<쿵푸팬더>, 할리우드와 대결하는 중국’이다. 프랑스인인 마르텔은 미국적인 술책과 제멋대로(이자 이기적)인 낙관주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렸던 시간과 부분적인 성공에 대해 코믹하기까지 한 묘사를 멈추지 않는다. 예컨대 루퍼트 머독을 다루는 대목의 소제목은 ‘머독은 어떻게 중국에서 수백만달러를 잃고 한 여인을 얻었는가’다.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으로도, 요구는 다 들어주겠다는 시늉으로도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은 중국의 정치적 스탠스의 강건함이 아니라 서구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경제적 탐욕(이 말이 거칠게 들린다면 경제적 애국심이라고 바꾸어 불러도 될 것이다)의 크기다. 희화화할 대상을 제대로 잡은 프랑스인의 섹시한 유머감각이 이 장에서 빛을 발한다.
우울한 일이지만 우리는 정치라고 불리는 거의 모든 가치를 경제로 바꾸어 불러도 아무 손색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정치뿐 아니라 사랑, 가족, 정의 등 무엇이건 다 마찬가지 형국이다). 메인스트림의 전략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부지불식간에 메인스트림 밖의 삶을 알지 못하게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이 책은 소름돋게 재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