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가토는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것을 뜻하는 음악 용어다. 권여선이 15년 만에 내놓은 장편 <레가토>는 사라진 여자 오정연에 대한 기억을 찾고자 과거 30여년의 이야기를 쉼없이 이어간다. 이야기는 1980년 광주항쟁 때 돌연 자취를 감춘 오정연의 행방을 그녀의 동생 하연이 30년이 지난 뒤에야 좇으며 시작된다. 그녀의 행방에 대한 첫 단서는 오정연이 사라졌던 30여년 전 존재했던 전통연구회 서클 카타콤에 있다. 표면적으론 전통연구회이지만 독재타도를 외치던 젊은이들이 모였던 그곳에 주인공 박인하와 사라진 여자 오정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난 뒤 당시 서클의 회장이던 박인하는 의원이 되었고 그를 따르던 선후배들도 모두 한자리씩 하며 옛 기억은 그저 추억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하연이 등장해 오정연에 대한 수소문을 하면서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다시 맞춰보기 시작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들이 맞춰본 기억의 조각들은 ‘레가토’란 용어처럼 부드럽게 이어지지만 아름답지는 않다.
독재타도를 외쳤던 시대가 안겨준 물리적 정신적 상처, 뜻을 모아 운동하는 이들 사이에도 존재했던 폭력성, 세월이 흘러 학생운동에 매진했던 시절을 그저 추억으로만 생각하는 자들의 속물근성 등 어쩌면 <레가토>가 꾸려놓은 서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경험한 어떤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이야기의 결말은 상투적으로까지 들린다. 하지만 서사에 사라진 여자에 대한 미스터리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통속의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가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에 권여선의 장기 중 하나인 날카로울 정도의 생생한 묘사도 한몫한다. 작가는 현실과 과거를 쉼없이 오가며 시대배경, 서사, 인물을 구체화하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렇기에 400페이지가 훌쩍 넘는 장편소설임에도 서사의 호흡이 가쁘지 않다는 인상을 준 점이 놀랍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것은 흩어진 시간들을 펼쳐놓고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퍼즐과 다르지 않다. <레가토>는 그 단어가 가진 뜻처럼 이야기를 잇고 맞춰나가는 거대한 퍼즐이다. 완성된 그림에서 독자들은 시대와 인간이 가진 모순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