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팀 버튼이 동화를 차용해 영화를 만든다면, 그건 <백설공주>가 아닐까 내심 생각해왔다. “눈처럼 하얀 피부, 앵두처럼 붉은 입술, 칠흑 같은 검은 머리”를 지닌 백설공주는 팀 버튼이 사랑해 마지않는 창백한 미녀이고, 기묘한 일곱 난쟁이가 살고 있는 숲은 팀 버튼 세계의 원천인 고딕적인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공간이라 여겨졌다.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루퍼트 샌더스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그림 형제 동화의 어둡고 잔혹한 에너지를 만끽하고 싶었던 관객의 기대감을 얼마간 충족시키는 작품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백설공주>를 계승한 수편의 애니메이션과 영화가 덧씌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선택한 장르는 ‘역사 판타지’다. 왕비(샤를리즈 테론)가 허름한 마차에 일부러 갇혀 있다가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다음 왕국의 습격을 명하는 장면은 트로이 전투를 연상케 하고, 왕국에서 밀려난 공주(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난쟁이와 요정 종족을 만나 세력을 확장해나가는 설정은 영웅담의 전형적인 서사를 따른다. 영화가 이 과정을 다루는 방식은 무척이나 진중하다. 왕자와의 로맨스가 거세되어 있고, 사냥꾼(크리스 헴스워스)이나 난쟁이조차 처음 만난 공주를 잠재적인 적으로 인식하는 건 이 영화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스노우 화이트의 가장 큰 목표는, 왕자의 키스를 받아 목에 걸린 사과를 뱉어내는 것이 아니라 신뢰받는 영웅이 되어 자신의 힘으로 왕국을 되찾는 것이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유니버설 픽처스가 3부작으로 기획한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다. 미래를 염두에 둔 듯, 이 영화는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1편부터 대규모 전투 신과 CG로 점철된 판타지 장면들을 쏟아낸다. 다행히도 제작진의 물량공세가 헛되지는 않은 듯하다. 기괴하고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는 어둠의 숲, 왕국 밖을 정탐한 왕비가 타르에 젖은 까마귀처럼 서서히 본모습을 되찾는 장면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신들이 눈에 띈다. 시각효과 슈퍼바이저 니콜라스 트로이안과 프로덕션 디자이너 도미닉 왓킨스의 공을 높이 살 만하다. 반면 아쉬운 점은 다소 복잡한 이야기 전개가 이처럼 주목할 만한 장면들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주연 캐릭터인 스노우 화이트와 사냥꾼, 왕비와 윌리엄(공작의 아들이자 스노우 화이트를 사랑하는 청년)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대사를 통해 복선처럼 암시되는데 2, 3편을 염두에 둔 설정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구조 때문에 영화의 집중력이 흩어지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2편이 기다려지는 영화다. 도대체 더이상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이유만으로도 1편을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