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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은퇴 선언한 인도의 국보급 플래이백 가수, 라타 망게쉬카르

라타 망게쉬카르

지난 4월24일 인도의 국보급 플래이백 가수로 칭송받아온 라타 망게쉬카르가 은퇴를 선언했다. 플래이백 가수란 인도영화에서 주인공 대신 노래를 부르는 전문 가수를 말한다. 열세살이 되던 1942년 영화계에 입문해 장장 70년 동안 활동해온 노가수의 은퇴 메시지는 앞으로 자신이 부른 노래를 사용하게 될 경우 원곡 그대로 사용해 달라는 것이 전부였다. 은퇴 소식이 자신의 첫 노래 스승이자 영화계에 몸담는 계기가 됐던 아버지의 70회 기일에 맞춰 발표된 터라 현지 언론들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그녀의 음악 인생을 재조명했다. 특히 후배 영화인들은 대선배의 은퇴를 “인도 영화사의 한 장(章)이 끝난 것”으로 묘사하며 존경을 표했다.

사실 대다수 인도 영화사 책들의 영화음악 설명 부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라타 망게쉬카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년 동안 만들어낸 진기록들과 함께 플래이백 가수라는 분야가 인도 영화산업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기까지 그녀와 관련된 일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먼저 기록 면을 살펴보면 망게쉬카르는 1974년부터 1991년 사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레코딩을 한 가수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던 1950년대의 경우 하루 평균 4곡씩 녹음했다고 하는데, 대략 1천편 이상의 인도영화에서 6천곡 이상의 주제곡을 부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마더 인디아> <데브다스> <쉬리 420> 등 195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부터 <딜세> <딜 또 빠갈 해> <라간> <비르 자라> <랑데 바산티> 등 비교적 최근의 흥행작의 주제곡에도 참여해 동시대 인도인들 중 그녀의 노래를 듣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편 인도 영화인들은 플래이백 가수가 독립된 전문 분야로 자리잡는 데 그녀의 공이 가장 컸다고 평가한다. 1930년대 중반 도입된 플래이백 방식은 캐스팅의 범위를 확대해 새로운 연기 방식을 지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1940년대 들어서는 출중한 외모에 기막힌 노래 실력까지 겸비한 발리우드 스타들의 탄생에 일조한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플래이백 가수가 부른 노래는 주인공이 쓰는 가발, 안경과 같은 일종의 소품처럼 취급되었다. 당연히 플래이백 가수의 이름은 영화 크레딧에 올라가지 않았고, 라디오 방송에서는 플래이백 가수의 노래를 립싱크한 영화 주인공이나 영화 속 캐릭터의 이름으로 음악이 소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플래이백 가수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가장 먼저 제기했던 이가 망게쉬카르였고, 영화인들 사이에서 점차 설득력을 얻어 1949년 라즈 카푸르의 영화 <바르사트>를 시작으로 플래이백 가수의 이름이 크레딧에 정식으로 올라가게 된다.

<마더 인디아>

망게쉬카르는 더 나아가 인도 영화제들의 시상식에 플래이백 가수 부문이 신설되는 데도 앞장섰다. 지난 1956년 그녀가 부른 영화 주제가가 필름페어 최우수 영화음악상을 수상했을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영화제쪽은 망게쉬카르에게 축하공연을 요청했지만 망게쉬카르는 플래이백 가수에게 수여되는 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연을 거부했다. 이후 필름페어영화제쪽은 내부회의에 들어갔고 결국 1958년 플래이백 가수 부문을 신설하기에 이른다. 신설 첫해부터 이후 8년 동안 네 차례나 최우수 여자 플래이백 가수상은 망게쉬카르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1969년 후배들이 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필름페어가 수여하는 상은 더이상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이후 그녀가 필름페어로부터 받은 상은 1993년 평생 공로상이었다. 이외에도 지난 2001년에는 인도 영화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인도 정부가 수여하는 가장 권위있는 상인 바라트 라트나상을 수상하며 유명 플래이백 가수를 뛰어넘어 가장 존경받는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인도 영화계 안팎에서는 누가 망게쉬카르의 자리를 대체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레코딩 기록 면에서 망게쉬카르를 앞선 친동생 아샤 보슬레와 망게쉬카르와 유사한 창법을 구사하는 알카 야그닉 등의 유명 여성 플래이백 가수들이 있지만 그녀만큼 로맨스, 슬픔, 에로티시즘, 코믹함까지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가수는 없다라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한편 망게쉬카르는 은퇴 이후 인도 전통 종교음악 일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는데, 그녀가 종교음악 부문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킬지가 벌써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