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매드맨>에 대해 쓸 수 있게 되었다. 돈 드레이퍼(존 햄)라는 남자와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 혹은 1950년대 뉴욕의 매디슨 애비뉴를 따라 즐비했던 광고회사 중역들의 이야기인 <매드맨>은 미드에 대한 칼럼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글로 쓰고 싶어 기회를 노렸지만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지금껏 손대지 못했던 드라마다. 시간여행이라도 하듯 1950년대로 돌아간 이 드라마는, 거스를 수 없던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면서도 끝없이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했던 한 남자의 삶을 그려낸다. 미국인들에게는 ‘황금기’이자 노스탤지어의 대상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는 사실도 중요했지만 시청자와 평단은 가족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 돈 드레이퍼의 매력에 저항할 새도 없이 빠져들었다. <매드맨>의 인기와 완성도는 2008년부터 4년 연속 에미 시상식 드라마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매드맨>의 크리에이터는 <소프라노스> 작가 출신인 매튜 와이너다. 크리에이터이자 프로듀서이고, 작가이며, 때로는 메가폰을 잡기도 한 와이너는 <소프라노스>의 데이비드 체이스나 <식스 핏 언더> <트루블러드>의 앨런 볼보다 몇년 늦게 TV에 입문했다. 와이너는 코미디 작가로 출발했다. USC 영화과를 졸업한 뒤 친구가 만든 시트콤의 농담 전담 작가로의 출발이 그의 첫 직함이었다. 그 뒤는 다소 뻔하다. 와이너는 어떤 파일럿이든 찾아가 공짜로 일해줬고, 모두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했으며, 인맥을 만들어 그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하지만 기회는 다른 쪽에서 찾아왔다. 우연히 와이너가 쓴 <매드맨>의 초안을 읽고 마음에 든 데이비드 체이스가 그를 <소프라노스> 시즌5의 작가로 고용했다.
매튜 와이너는 어려서부터 작가가 꿈이었다. 헤밍웨이의 사진이 거실에 붙어 있고, 형제들이 우디 앨런처럼 되고 싶어 하는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영화, TV, 문학의 자양분을 흠뻑 마시며 자라난 소년은 아니었다. 정치적이었던 그의 부모는 인종적으로 차별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TV프로그램을 보지 못하게 했고, 그나마 허락된 주말 TV 시청시간은 말썽꾸러기였던 와이너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그는 잠시라도 TV를 볼 수 있는 순간은 절대로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TV 봐도 돼요?”를 묻는 <매드맨> 속 아역배우의 대사는, 와이너가 <매드맨>에 심어둔 수많은 자전적인 면 중 극히 일부일 것이다.
등장인물의 대부분에게 자신을 투영했다는 그의 증언대로 에피소드가 방영될 때마다 가족들에게 자기 이야기가 아니냐는 추궁에 시달린다는 와이너는 <매드맨>의 세부사항까지도 치밀하게 설계했다. 캐릭터는 물론 의상, 자주 등장하는 세트의 인테리어 등 드라마 속 모든 요소가 그가 가진 비전을 투영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1950년대에서 출발해 60년대로 접어든 시즌5에는 드라마의 시대 배경이 철저한 연구를 거쳐 프로덕션 디자인 전반에서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다. 이를테면 돈 드레이퍼가 상의를 벗는 장면에서도 와이너는 1950년대답게 식스팩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카펫의 색상을 통해서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표현했다. 등장인물들이 식사를 하는 레스토랑의 웨이터의 바지폭이 얼마나 좁은지에 대해서까지 신경을 썼다는 와이너의 인터뷰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드맨>의 세계는 그가 처음 파일럿을 썼던 1999년 어느 늦은 밤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