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형사>는 강지환의 뱃살만으로도 시선이 멈추는 영화다. 강지환 자신도 지금까지 두툼한 뱃살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우리도 본 적이 없다. 그의 뱃살은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이나 <공공의 적>의 설경구가 가졌던 뱃살과 성격이 다르다. 매끈하고 세련되고 또렷했던 그동안의 강지환과 뱃살 사이의 이물감은 영화에서 몸을 불렸던 다른 배우들보다도 크다. 솔직히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강지환의 필모그래피는 안정적으로 쌓여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소 무리해 보이는 도전을 감행한 데에는 분명 이미지 변신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강지환이 바라보는 고지에 대해 물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차형사 같은 몸을 가져본 적이 있나. =없다. 71, 72kg을 유지하면서 살았다. 잘 안 찌는 체질이다. 술 많이 마시면 배만 나온다.
-그런 체질인데, 어떻게 찌웠나.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자장면, 피자, 햄버거, 폭탄주를 많이 먹으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스케줄상 촬영 중에 살이 쪄야 하고, 다시 또 중간에 빼야 했다. 살을 뺐을 때 라인이 나와야 했다. 아무거나 먹으면 안되겠더라. 트레이너랑 합숙하면서 집에서 하루에 6끼씩 먹었다. 닭가슴살이랑 밥을 사료처럼 먹었다. 나중에는 닭가슴살도 그냥 먹을 수 없어서 갈아 마셨다. 맛이 정말 최악이었다.
-차형사의 몸이 되고 나서 거울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살을 찌우는 동안 폴라로이드로 찍어가면서 변화된 모습을 기록했다. 그 사진을 보고 있으니 답이 안 나오더라. 사진이 유출될까봐 걱정이었다. (웃음) 길거리에서 누가 내 사진을 찍으면 평생 굴욕사진으로 남을 것 같기도 했다. 다시 뺄 수 있을지도 두렵더라. 거부감이 있기는 있었다.
나를 웃긴 시나리오
-<차형사>를 선택할 때도 그런 걱정을 했을 것 같다. 예전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픈 마음이 있었나. =많이 있었다. 그동안 <7급 공무원>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로맨틱코미디를 많이 했었다. 드라마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끝내고 들어온 시나리오들을 보는데, 가장 먼저 배제한 게 코미디였다. 주로 스릴러나 액션처럼 남성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나 멜로영화 위주로 봤다. <차형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뚱뚱한 형사가 날씬해진다는 설정이 좀 식상해 보이더라. 그런데 결국 다시 나한테 왔다. 어느 날 너무 편한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내가 웃기 시작한 거지. 무엇보다 코미디지만 비주얼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과제가 있었다. 편하게 이야기하자면 만약 영화가 잘 안되더라도 내 몸이 남을 것 같더라. 여름에 수영장 가기는 좋을 것 같았다. 몸을 만든 김에 화보도 찍어볼까 했는데, 막상 촬영이 끝나고 나니 다 귀찮더라. 마음껏 먹으며 살았다. (웃음)
-극중 차형사는 딱히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 정도. =정말 강철중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신선해 보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뚱뚱하고 지저분한 성격의 인물이지만 비호감은 아니어야 했다. 차형사의 패션스타일이 노숙자 컨셉이라고 해서 영등포역과 서울역에 자주 가봤다. 나중에는 헤어스타일에 포인트를 주려고 했다. 그냥 부스스한 머리로는 안되겠더라. 파마머리도 뭔가 부족했다. 뭔가 더 건드리고 싶었는데, TV에서 파리지앵 정재형씨를 봤다. 진짜 정재형씨 헤어스타일이 모델이었다. 각진 단발머리라고 해야 하나? 뚱뚱한 형사인데, 헤어스타일이 저런 모습이면 일단 비주얼에서 먹히겠더라.
-차형사는 단지 뚱뚱한 남자가 아니다. 그냥 꾸미는 걸 싫어하는 남자다. 배우로 일할 때 외에 평상시 모습은 어떤가. =상당히 깔끔한 성격이다. 취미가 청소다. 쉬는 날에 청소하는 걸 좋아한다. 남들은 낚시의 손맛을 안다고 하지만 난 청소기의 손맛을 즐긴다. 최신 제품이 나오면 구입할 정도다. (웃음) 평소에 세안도 잘 챙긴다.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는 피부 관리를 안 할 수가 없다.
-<7급 공무원>은 사실상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 이후에 나온 첫 흥행작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출연한 드라마의 시청률은 높지 않았다. <7급 공무원> 때보다 <차형사>의 흥행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것 같다. =정확히 짚었다. 완전히 다르다. 어쨌건 배우는 시청자나 관객이 봐주라고 하는 일이다. 기대치에 못 미치면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 <영화는 영화다>로 신인상을 거의 다 받았고, <7급 공무원>도 흥행한 뒤에 드라마로 갔는데 정말 운이 없어도 그렇게 운이 없을 수가 없더라. 붙어도 꼭 30% 넘는 드라마와 붙었다. 예전부터 그랬다. 갈증이 많았다. 부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래서 영화를 고르는 시간이 길어진 것도 있다. 영화로 꼭 3연타석 안타를 치고 나면 연기 외의 갈증을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차형사>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일단 아예 망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선택한 점도 있다. (웃음)
-<7급 공무원>을 끝낸 뒤 한류 스타의 입지가 더 굳건해졌다. =그때 싱가포르, 대만, 중국으로 프로모션을 다녔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힘도 났다. 영화 한편의 힘이 이렇게 세구나 싶더라. 그런데 K-POP이 뜨면서 찬물을… 뭔가 좀 누려볼까 했더니…. (좌중 웃음)
“결국 여러 작품에 도전해야 한다”
-오히려 시너지가 되는 건 없나보다. =전혀. 오히려 힘들다. 물론 나만 그럴 수도 있는데, 배우에 대한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거다. K-POP 이전에 한류 스타들의 팬 미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레퍼토리가 너무 고정되어 있더라. 이미 다 본 드라마를 편집해서 보여준다. 그러고 나면 1시간 정도 이야기를 한다. 토크가 끝나면 노래 2, 3곡 부르고, 팬들이랑 포옹하고, 박수 치고, 그리고 끝이다. 이런 구성이 쭉 이어져왔는데, 솔직히 내 팬 미팅도 그렇게 하면 내가 먼저 지루하더라. 무엇보다 팬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좀더 많은 걸 시도하려 했다. 뮤지컬을 한 적이 있으니까 연기와 토크와 노래를 한데 엮어서 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목이 되는 건가. =먼저 모놀로그처럼 내가 나에 대해 연기를 한다. 그리고 무대 위의 다른 배우들과 연기를 주고받는 부분이 있다. 그러다가 통기타 반주가 들어오면서 노래도 부르는 식이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춤추고 노래했었다. ‘브아걸’도 해보고 다 해봤다. (웃음) 하지만 일단 나는 가수가 아닌 배우이니만큼 춤이나 노래보다는 연기를 강점으로 내세우려 했다. 아예 뮤지컬 제작에 참여해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화와 뮤지컬, 콘서트, 팬 미팅을 접목하는 걸 시도했다. <킬러>라는 제목의 영화를 직접 만들었다. 내가 제작비 5천만원을 대고, 시나리오작가도 붙이고, RED 카메라로 찍었다. 공동연출로도 참여했다. 일단 공연장에서 <킬러>가 상영되는데, 영화에서 내가 싸우다가 도망가면 무대로 툭 튀어나오는 거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가 사라지면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거고. 그러다가 콘서트로 마무리가 되는 거지.
-항상 그런 고민을 하나 보다.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준비를 안 하고 무대에 서면 창피하다. 정말 창피하다. 내가 공연을 하고 있는데, 관객이 졸거나 다리를 꼬고 앉아 있으면 너무 죄송하다. 나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한 분들이지 않나. 그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팬들에 대한 보답뿐만 아니라 당연히 배우로서 스타로서의 위치에 대한 목표를 바라보고 하는 고민이기도 할 거다. =당연하다. 일단 나는 멜로, 액션, 코미디, 뮤지컬 등 모든 연기가 가능한 배우가 되고 싶다. 목표라고 한다면 톱배우가 되고 싶다. 내가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은 하지만 아직 A급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게 맞다. 분명히 나보다 네임밸류가 높은 배우들이 있으니까. 연기를 정말 잘하고 싶다는 목표만 있다고는 말 못하겠다. 톱스타의 자리에 올라야 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조건도 좋아진다. 일단 스타성이 높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작품은 더 시선이 가는 게 당연하니까. 연기만 잘해서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스타성을 높이는 매뉴얼이라는 게 없지 않나. =작품을 하는 것밖에 답이 없다. 예전에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었을 때 기대에 못 미치는 게 많았다. 결국 여러 작품에 도전해야 하는 거다. <차형사>도 그런 맥락에 있는 작품이다.
-<차형사>가 흥행하면 말한 대로 3연타석 안타다. 그다음 단계의 목표가 있나. =<영화는 영화다>로 그해 신인상을 거의 다 받았다. 상이라는 게 중요하지는 않은데, 사실 받아도 달라지는 건 아닌데 한번쯤은 그해의 남우주연상을 휩쓸고 싶다. (웃음) 조금 더 욕심을 내자만 <차형사>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거다. 흔히 액션이나 코미디로 인식된 배우들은 액션배우, 코미디배우로 불리지 않나. ‘배우’로 불리지 않는다. 로버트 드 니로나 알 파치노는 배우라고 하지만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성룡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코미디와 액션, 정말 힘들다. 죽어가는 연기에 몰입하는 것만큼 누군가를 웃겨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액션을 할 때는 몸 만들고, 합을 짜고, 또 부상에 대한 위험을 견디면서 연기한다. 알 파치노 연기에 절대 뒤지지 않는 고통이 따른다. 더 하면 더 했지. 그동안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물을 때마다 성룡을 꼽았다. 그때마다 상대방의 반응이 ‘도대체 왜 성룡이냐?’는 거였다. 난 재밌는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오면 재밌고, 그의 몸을 보면 멋있는데 말이다. 내가 코미디 연기를 해보니 그런 선입견을 알겠더라.
영화보다 더 고민되는 것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뭔가. =<차형사>의 흥행도 고민이기는 한데, 일단 영화가 나오니까 예능 출연에 대한 압박이 오더라. <연예가중계> 같은 프로그램은 인터뷰니까 할 수 있겠는데, 예능은 잘….
-잘 안 맞는 거 같나. =평소에 자주 나갔던 자리라면 모르겠다. 그런데 영화 나올 때만 우리 영화 잘 봐주세요 하면서 옛날이야기하고 재밌는 일화를 만들고 그러는 게 너무 힘들다. 물론 주연배우로서 책임감은 있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으로 뭔가 해보려 한다. 결국에는 엎어졌지만 <차형사> 홍보 때문에 뮤직비디오를 만들려고 했었다. <개그 콘서트>의 김준현씨가 뚱뚱한 차형사로 나오고 내가 후반부의 모델로 출연하는 거였다. ‘용감한 녀석들’의 노래를 만든 분에게 곡도 받으려 했다. 직접 만나기도 했었고, 곡도 나왔었다. 가사도 아예 대놓고 홍보하는 식이었다. “손익분기점 180만! Say! Ho! 우리 영화사 대표 이번에 첫 영화, 이번에 망하면 문 닫아야 돼 Say! Ho!” 이런 거였다. (웃음) 본의 아니게 엎어져서 이제 다른 걸 또 구상해야 한다.
-그런 고민을 하고, 계획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게 즐거운가 보다. =내 연기고 내 캐릭터니까. 그리고 내 작품이고, 내 공연이니까. 드라마나 영화의 연출에 내가 관여할 수는 없다. 공연도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효과적인 결과를 위해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