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도 걷고, 손녀도 걷고, 이웃집 외국인 며느리도 걷는다. <할머니는 일학년>은 서로 위로하고 아끼며 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족에 관한 영화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들을 잃고 일곱살 난 손녀 동이(신채연)를 돌봐야 할 처지에 놓인 오난이 할머니(김진구)는 그저 현실이 원망스럽고 막막하다. 심지어 동이는 친손녀도 아니기에 선뜻 정을 주지 못한다. 그렇게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왔지만 아들이 남기고 간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 한글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의 과외선생을 자처하는 손녀딸과의 동거가 시작된다. 그러나 공부는 이내 한계에 부닥치고 배우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할머니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기로 결심한다.
<할머니는 일학년>은 고지식한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행여나 아들이 부끄러워할까 스스로 까막눈임을 숨기는 일자무식의 어머니는 여러 이야기에서 수없이 들어온 어머니의 초상이기에 이제는 다소 낡아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울림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그 속에 담긴 희생과 애잔함의 냄새를 내 어머니의 그림자에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 구경 한번 못해본 어머니가 ‘아들이 내 세상’이라고 말하는 모습은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핏줄이기에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는 모습 대신 아들을 잃은 어머니와 아빠를 잃은 딸이 서로 상처를 감싸안으며 가족이 되는 과정에 주목한다. 보듬고 위하고 애정을 쏟으면 그게 가족이라는 소박하고 당연하며 단순한 진리. 자기가 할머니의 보호자라며 고사리손으로 할머니 병간호를 하는 곰살맞은 손녀의 모습이나 그런 손녀를 꽉 껴안아주는 할머니의 굽은 등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깊은 호소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