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자체가 도시로 화(化)했다고(도시가 르네상스로 화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일컬어지는 피렌체에 가면서 목표를 딱 두 가지 세웠었다. 미켈란젤로와 프레스코화. 미켈란젤로로 따지면 결국 바티칸에 가서야 “다 보았다”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지만 프레스코화는 역시 피렌체였다. 지금은 산 마르코 미술관이 된 산 마르코 수도원에는 집회실과 승방에 프레스코화가 그려졌다. 방이 아니라 무대, 그림이 아니라 태초에 있었던 말. 산 마르코 미술관 2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돌계단을 오르자 계단 위 벽에 프라 안젤리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태고지>가 드러났다. 도판으로 숱하게 봤는데 불가사의할 정도로 실물이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면 그 주제부터가 불가사의 아닌가.
‘수태고지’는 기독교 회화에서 가장 인기있는 주제 중 하나다. 라틴어로 쓰인 성경만이 존재하던 시절에 화가는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 대중에 전달하는 역할이었고, 당연히 스토리텔링의 시각화를 위한 다양한 상징이 등장했다. 유럽 어느 미술관에서나 수태고지를 그린 그림을 숱하게 만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마리아의 앞에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예수를 임신할 것임을 알린다. 수태고지에는 신기할 정도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수태과정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활동성이 필사적으로 제거되어 있다. ‘이것은 그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에 대한 믿음(원죄 없는 잉태)의 근간이다. 수태고지는 주로 백합을 든 날개 달린 천사가 한 여인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마리아는 천사의 전언에 놀라고, 심사숙고하고, 자신이 남자를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질문하고, 신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마지막으로 잉태의 공덕이 행해진다. 이 다섯 단계 중 대개 처음 두 단계가 많이 그려졌다.
시리 허스트베트는 <사각형의 신비>에서 베르메르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이 수태고지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그림에는 천사가 없고, 성모가 될 마리아라기보다는 부유한 상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양손으로 목걸이를 들고 빛이 들어차는 창문과 그 옆 벽에 붙은 (거울로 추정되는) 사각 틀을 향해 서 있다. 허스트베트는 백합처럼 빛나는 진주알에서 순수함과 처녀성의 상징을,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빛에서 수태고지가 일어났다고 알려진 계절과 시간과 성령의 존재를, 거울에서 심사숙고의 단계에 대한 암시를 상상한다. 숱한 책들에서와 같이 지식을 전달하는 해설이 아닌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상상이 흥미롭다.
ps.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여러 그림들을 읽어주는 이 책의 저자 허스트베트는 소설가 폴 오스터의 부인이다. 시 낭송회에 갔다가 만난 인연이라는데, 수태를 행할 남자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앞으로 시 낭송회에 열심히 나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 유익한 작가 소개였다. 참고로 그들이 만난 것은 1981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