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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천생 여자

<철의 여인>의 마거릿 대처

일찍이 아름다운 영부인과 왕비의 옷차림은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사였다. 재클린 케네디, 그레이스 켈리, 카를라 브루니를 비롯한 정계의 여인들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스타일과 매력적인 애티튜드로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진 남자를 사로잡은 것도 모자라, 여성들의 끊임없는 관찰과 추종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들은 자신이 가진 여성성을 더할 나위 없이 멋지게 활용하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스스로 세상을 이끄는 길을 선택한 여성 정치가 마거릿 대처의 삶과 입장은 그녀들과 대척점에 있다. 영화 속 대처는 언제나 여론의 눈치를 보는 약해 빠진 남자들을 못마땅해하고 정면승부를 펼치며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는다. 그녀는 노련하고 매혹적인 애티튜드로 상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보다는 언성을 높이고 언짢은 소음을 만들어내는 일을 불사하며 결국 피를 흘려서라도 원하는 것을 쟁취해내고야 만다. 남자들의 틈바구니에서 그녀의 여성성은 약점이자, 끊임없는 지적과 공격의 대상이며, 권력의 기반을 잡기 전까지는 조롱의 대상이기도 했다.

참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러한 여건 속에서도- 게다가 그녀의 외모나 패션 감각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다고 묘사되고 있지만- 그녀는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총리가 되기로 결심한 뒤 우스꽝스런 모자와 목걸이를 벗고, 높은 톤의 목소리를 위엄있게 고쳐야 한다는 제안에 두줄의 진주목걸이만은- 남편이 쌍둥이를 낳은 기념으로 선물한 것이라- 타협할 수 없다고 그녀는 딱 잘라 말한다. 그런가 하면 총리가 되어서는 어떠한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심지어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났을 때조차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헤어 스타일과 푸른 빛깔의 스커트 슈트, 고지식해 보일 정도로 완벽한 액세서리 세트를 고집한다. 물론 어느 정도는 위엄을 갖기 위한 ‘무장’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 과정을 기꺼워하는 듯 보인다. 말년의 대처는 기억을 잃어버리고 좀전에 했던 말과 행동까지 잊어버리게 되지만, 혼자 지내는 집 안에서조차 격식을 갖추어 자신을 단장하는 일만은 잊지 않는다.

그녀가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독단적일 정도로 신념에 찬 정치적 행보 때문이었겠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거울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내팽개친 채 살 수밖에 없는 요즘의 나로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자신을 가꾸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마거릿 대처에게 ‘철의 여인’이라는 훈장을 헌정하고 싶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예쁜 생김새나 뛰어난 감각, 혹은 여린 마음에서 비롯되는 여성성보다 더욱 따라하기 힘들고, 경이롭기마저 한 여성성이란, 어쩌면 세상과 피를 토하며 싸우는 전쟁 같은 순간에도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고쳐 바를 수 있는 고집과 정성에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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