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 흐드러진 4월 초, 문정현 신부님이 강정마을 방파제 7m 아래로 떨어졌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분께 임종이 닥쳤다고 생각했다. 그때 강정마을을 새까맣게 포위하고 있던 경찰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죽음을 또 어떻게 축소 은폐해야 하나, 설마 그런 생각을 하지야 않았겠지. 다행히 신부님은 그런 높이에서 추락하고서 어떻게 그 정도밖에 다치지 않았는지 모두 신기해할 정도로 입원 13일 만에 퇴원해 강정마을로 돌아왔다. 사고가 난 그날, 포구에서 기도할 때 쓰던 깔개가 바람에 날려 방파제 밑에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70노구의 사제를 받아낸 그 기도용 깔개에 대해 생각한다. 고마워해야 할 것들은 대개 이렇게 바닥에 있는 것들이다.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
이른바 ‘강정앓이’ 중이다.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그곳이 염려되고, 밤새 별일 없었는지 안부를 챙기는 일부터 시작하게 된다. ‘앓이’를 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앓는다는 건 일종의 사랑의 상태다. 사랑의 에너지는 삶에 ‘건강한 스트레스’를 준다. 절망이 삶의 다반사라 하더라도 끝내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긍정의 원천. ‘앓이’ 중인 사람들을 만나면 그래서 힘이 난다. 덥석 포옹하고 싶어지고 힘내요! 말하고 싶어지고 사랑합니다! 고백하고 싶어진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을 위해 몸과 마음과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들. 점점 빛을 잃어가는 ‘인간의 품위’랄지 하는 말들에 새롭게 빛을 채워주는 사람들.
어떤 권력자들은 ‘앓이’ 중인 이 사람들을 ‘그깟 것’ 때문에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좌파 빨갱이’라고 매도한다. 사랑의 순수한 에너지에 무지한 이 ‘사랑 불감증 환자들’에게 ‘앓이’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주면 좋을까. 하긴, 자신의 이익이 걸린 일이 아니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위인들이 ‘그깟 바윗덩어리’를 살려달라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랴. 아름다움을 이해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자들이 권좌에 앉으면 세상을 급속도로 망가뜨려 추하게 만든다. 강정마을에 가보면 안다. 이런 곳에 전쟁기지를 세우겠다는 발상 자체가 평화와 아름다움에 대한 전쟁포고임을. 설상가상, ‘평화의 섬’ 제주도에 군사기지를 지어놓으면 경제발전은 물론 ‘관광 명소’가 된다고 홍보하는 그들의 도착적 병증을 도대체 뭐라 이름 할까.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들에 대한 끔찍한 학살. 주민들의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가 완전히 생략된 반민주주의 폭거. 오랜 전통을 가진 마을공동체의 붕괴.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기지를 짓는다는 어불성설. 건설공사를 수주한 거대 자본의 탐욕…. 강정마을을 살리기 위해 싸워야 하는 이 모든 이유들 저 바닥에는 ‘아름다움에의 의지’가 있다. 인간은 어떤 최첨단 공법으로도 구럼비 바위 단 1cm를 만들 수 없다. 수십만년 지구의 시간이 농축된 이 근사한 자연의 예술품은 군대의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권리가 있는 우리 아이들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