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여섯잔 정도 마시고 난 뒤에는 동생에게 전화하는 것이 괜찮은 생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소설의 첫 문장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웰스 타워의 단편집 <유린되고 타버린 모든 것>에 실린 <삶에서 한 걸음 물러서기>의 첫 문장은 알코올 기운 묻어나는 목소리로 “왜, 그런 거 있잖아?” 하듯 동생과의 불편한 관계를 은근한 듯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세살 어린 남동생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들. 예컨대 동생은 형이 함께 춤을 추었다는 이유만으로 꼬여낸 여자아이와 키스까지 해놓고는 잔뜩 실망한 뒤 몇년이나 지나서 별볼일 없는 경험이었음을 토로했다. 마흔살 언저리에 다다른 형제의 간극은 더욱 벌어졌다. 그래도 “나는 스티븐을 사랑한다”. 살아 있는 유일한 가족이니까. 행간에는 ‘나’의 저돌성과 무신경함이 묻어난다. “몇년 동안 나는 부동산 투자로 꽤 돈을 벌었다. 그리고 왜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그것 때문에 스티븐은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인생을 받아들이며 세번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토지를 사고 팔아 차익을 챙기며 살아왔다. 여튼, 부동산 시장 악화로 푹 꺼진 자산을 싹싹 긁어 산을 하나 매입해 산속 통나무집에 자리를 잡은 어느 날 ‘나’는 술을 여섯잔쯤 마시고 혼자서 소변을 보지도 못하는 병든 개와 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괜찮은 생각 같아서. 그냥.
평범한 나날만이 불러낼 수 있는 사건 사고들, 남에게 말한 적 없는 내가 겪은 비참한 순간들. 웰스 타워는 그런 순간들에 놀라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에서 그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체념을 읽게 되지만 그 끝에는 관조가 있다. 덤덤한 응시. 때로는 자신의 삶을 타인의 그것처럼 받아들이는 태도. 이 책에 실린 첫 이야기 <갈색 해안>의 주인공 밥은 어항 속 물고기들을 다 죽여버린 해삼에 감정이입을 하고 만다. “그가 바다 생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렇다, 그는 아마도 이 해삼의 친척 정도 되었을 것이다. 똥덩어리 같은 외모에다가 근처에 다가오는 사랑스러운 생명체를 남김없이 죽여버리는 저주받은 생태를 지닌 이 녀석 말이다.” 이 단편집의 표제작은 맨 마지막에 수록된 판타지 소설이다. 용이 등장하지만 기실 가족과 사랑 이야기인 멋진 종결작이다. “세상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고 나면, 또 당신 자신조차 때로는 아내와 아이들을 그렇게 대하게 되면 가족을 미워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전심전력으로 가족을 돌보고 나머지 일에는 몽땅 눈을 감아버리게 된다는 건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웰스 타워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데이비드 세다리스와의 인터뷰였다. 요즘 읽는 책에 대해 묻자, 그는 내 노트를 달라고 하고는 ‘강추’하는 소설들의 제목을 적어주었다. 웰스 타워의 <유린되고 타버린 모든 것>은 그 첫 번째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