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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37.5] 사실적이되 인상적으로
이영진 사진 최성열 2012-05-08

<은교> 김태경 촬영감독

Filmography

1994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입학 2000 한국영화아카데미 입학(촬영 전공) 2005 <분홍신> 촬영 2008 <모던보이> <바보> 촬영 2009 <내 사랑 내 곁에> 촬영 2010 <심야의 FM> 촬영 2011 <카운트다운> 촬영

‘<모던보이> 때보단 아무래도 편하겠지.’ <은교>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었을 때 김태경(39) 촬영감독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4년 전의 막대한 노동에 비하면(<모던보이>는 거의 모든 장면을 핸드헬드로 찍었다), <은교>는 인물 수가 적은 데다가 로케이션 장소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의 예상은, 그러나 정지우 감독이 박해일을 캐스팅하면서 산산조각났다. “분장하고 나서 테스트 촬영을 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사람이 아니었다. (웃음) 박해일도 아니고, 이적요도 아니고.” 이적요를 진짜 노인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은 비단 특수분장 스탭의 고민만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조명이 밝으면 실리콘 피부가 반짝반짝 윤이 난다. 어둡지만 부드러운 광원을 만드느라 애먹었다.”

이적요를 ‘사실적’으로 찍어내는 만큼 은교를 ‘인상적’으로 그려내는 작업 역시 만만치 않은 난관이었다. “처음엔 은교를 로리타처럼 묘사하려고도 해봤다. 그래서 일본에서 나온 <스쿨걸 콤플렉스>라는 사진집을 참조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다. 그랬다면 엄청나게 공격을 받았을 테니까.” 은교의 싱그러운 매력은 고스란히 남기되 성적인 자극은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태경 촬영감독이 찾아낸 해법은 은교에 걸맞은 적절한 피부 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모나 쿤의 누드사진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다. 그녀의 사진에는 전라의 남녀가 등장하지만 전혀 선정적이지 않다. 왜 그럴까 싶었는데 피부 톤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하이라이트를 많이 썼고, 피부 톤의 붉은 기를 다 뺐다.”

하지만 김태경 촬영감독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이적요도, 은교도 아닌 정지우 감독이었다. “감독님은 배우들의 감정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배우는 마음껏 움직여라, 카메라가 따라갈 테니, 다. 게다가 세트를 끔찍이 싫어하기 때문에 촬영하는 입장에선 공간의 제약이 심하다. 카메라를 세우기조차 어려운 곳을 원한다. 레볼루션 렌즈가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다.” 두 번째 작업이라 많이 익숙해졌다면서도 그는 “촬영 직전까지 생각을 멈추지 않는” 정지우 감독의 연출 방식에 혀를 내두른다. “잠깐 짬이 나서 한숨 돌리고 있으면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쓱 곁으로 다가온다. 그럴 땐 정말이지 어딘가로 숨고 싶다. (웃음) 이적요가 창 닦는 장면도 폭설 때문에 잠시 촬영이 중단됐을 때 찍어서 넣은 거다.”

말은 그리 해도 김태경 촬영감독의 속내는 다르다. “사실 정지우 감독의 요구는 딱 손에 안 잡힌다. 모호하고 모순적이다. 이를테면 둥근 사각형을 찍어달라고 한다. ‘그렇게 전형적으로 찍을 거면 차라리 안 찍는 게 낫지 않아?’라고 말할 때는 정말이지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틀에 박히는 것도 싫고. 인위적인 변화는 더 싫고.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웃음) 하지만 그런 감독의 성향 때문에 한번 더 앵글을 고민하게 된다. 사실적(객관적)으로 찍되 인상적(주관적)으로 잡아내자는 나만의 촬영 원칙을 세우게 된 것도 정지우 감독과의 작업 덕분이다.” 김태경 촬영감독의 차기작은 강풀 원작의 <26년>이다. 아직 연출자가 정해지진 않았지만, 그 누가 됐든 즐거운 고생을 하게 되지 않을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줄줄줄 쏟아내는 김태경 촬영감독 때문에 말이다.

레볼루션 렌즈

잠망경 원리로 만든 렌즈. 비좁은 공간에서 원하는 화각을 구현할 수 있다. 헤나를 그려넣는 은교 얼굴, 침대에 돌아누워 있는 이적요의 얼굴 클로즈업 촬영 때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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