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음악 장르가 있지만 내게는 딱 세개의 장르뿐이다. 배경음악, 실용음악, 기능음악. 이 무슨 폭력적이고 무식한 삼위일체적 분류냐 싶겠지만, 새로운 곡을 접할 때마다 나의 무의식은 음악을 그렇게 구분하고 만다. 나 역시 장르를 존중하고 장르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그토록 간단한 음악 3장르 분류법이 있으니 어쩌겠는가. 본능을 따라야지.
‘배경음악’은 책을 읽거나 간단한 메모를 하거나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듣는 음악인데, 대부분의 클래식, 보컬이 없거나 리듬이 강하지 않은 재즈 등이 이 장르에 속한다. 이 장르의 특징은 내 주위의 공기를 떠돌지만 간섭하지는 않고, 부드럽게 뇌를 이완시켜주는 음악들이다. ‘실용음악’은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주로 듣는 음악인데 록이나 블루스나 포크를 포함한 대부분의 팝송이 (몇몇 과격한 음악을 제외하고) 이 장르에 속한다. 한마디로, 뇌를 꽉 조여주는 음악들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소설을 쓴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게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오기 힘든 버릇이다. 가끔은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음악이 대신 써주는 것 같은 중독 상태에 빠져들 때가 있다(소설의 퀄리티도 해당 뮤지션이 대신 책임져주면 좋겠지만…). 마지막으로 ‘기능음악’은 (무슨 대단한 기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거나 방을 치울 때(얼마나 자주 방을 치운다고!) 듣는 음악들이다. 대부분의 최신가요들과 최신팝송들이 여기에 속한다. 기능음악들은 머리가 반응한다기보다 몸이 반응하는 음악들이다. 드럼 비트가 가슴을 쿵, 쿵 때리고 그루브가 어깨 사이로 물결 치면 서서히 몸이 깨어난다.
요즘 동네 공원에서 걷기 운동하는 데 재미를 붙였는데, 최신가요가 없으면 운동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비트가 있어야 다리가 움직이지! 몇년 전 달리기를 열심히 할 때에도 최신가요를 열심히 들었는데, 그때 나의 달리기 기능음악은 휘성의 <With Me>였다. 그 노래의 비트에 맞춰 달리기 페이스를 조절하면 힘도 들지 않고 신나게 달릴 수 있었다. 요즘 나의 걷기 운동에는 여성 아이돌 그룹들이 늘 함께하고 있었는데, 최근 강력한 후보가 나타났다.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은 걷기 운동에 적당한 음악은 아니다. 비트는 적당하지만 (버스커 버스커의 곡답게) 그루브가 지나치게 넘실거려서, 걷다가 뒤뚱거릴 확률이 높고, 자칫 펭귄 엔딩으로 마감할 공산이 크다. 이 곡은 하늘을 보면서 걸어야 한다. 마침 동네 공원에는 벚꽃 나무가 있고, 바람도 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가 흔들리고, 흔들리는 가지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거기에 있다. 파란 봄 하늘이다. 파란 봄 하늘 아래로 분홍잎이 엔딩을 맞는다. 가사에는 둘이 손잡고 걷자고 되어 있지만 실은 혼자 걷기 좋은 봄이다. 짧게, 순식간에 바스라지는 엔딩을 느끼기에 좋은 기능음악이라, 봄밤에 자꾸 들으며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