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표지에 실린 사진을 보자. 처음에는 어떤 노년의 부인이 웃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턱 아래쪽이 제거되고 얼굴 하단이 홀쭉해지면서 그런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일흔살이 되기 직전에 에버트는 갑상선암에 걸렸고 세 차례의 수술 끝에 입으로는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할 수 없게 됐다. 에버트가 심각한 병에 걸렸고 그 때문에 은퇴했다고 몇년 전에 들었다. 하지만 2012년 4월26일 현재에도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에버트는 하루 전인 25일에 존 쿠색이 주연을 맡은 <더 레이븐: 에드가 앨런 포의 사라진 5일>에 관하여 리뷰를 쓰고 별 두개를 주었다. 그는 영화에 관한 글을 멈추지 않고 있다.
<로저 에버트: 어둠 속에서 빛을 보다>는 그의 자서전이다. 그러고보니 영화평론가의 자서전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한 필자는 이 책의 서평을 쓰며 “에버트보다 훨씬 더 자기도취적이고 준유명인사인 평론가 폴린 카엘조차도 감히 자기의 자서전을 쓰지는 못했”음을 지적한다. 오로지 에버트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1967년부터 영화평론 book을 시작한 이후 미국에서 가장 손꼽히는 대중적인 영화평론가이자 텔레비전 영화 프로그램(<에버트&시스켈>)의 인기 진행자였고 또한 영화평론가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는 거동조차 불편한 상황에서도 영화평 쓰기를 멈추지 않는 인물이다.
에버트는 꿈 많던 청년기 시절을 되짚는 동시에 리 마빈, 잉마르 베리만, 마틴 스코시즈, 로버트 알트먼 등에 대한 단상과 일화로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이야기꾼의 기질을 발휘한 다음 현재의 상태로 다시 돌아와 말한다. “나는 내가 이보다 더 나쁘게 보이지 않아서 행복하다. 나는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간단한 결정을 내렸다. 나는 글쟁이였다. 다른 외과적 시도를 제의받았지만, 나는 싫다고 말했다. 할 만큼 했다. 나는 내 지금 모습처럼 보일 것이고 나 자신을 활자로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만족할 것이다.” 에버트를 위대한 영화평론가로 말하는 건 망설여진다. 다만 한 인간으로서 그는 위대하다.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