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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감독의 자리는 어디인가?
문석 2012-04-30

<미스터 K> 사태가 이명세 감독의 하차로 일단락됐다. 100억원짜리 대형 프로젝트가 무산되지 않고 촬영을 재개할 수 있게 된 것 자체는 다행이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4월 초 제작사인 JK필름이 해외와 국내 11회 촬영분의 1차 편집본을 보고 이명세 감독에게 ‘제작 진행 점검’ 차원에서 촬영 중단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JK필름 윤제균 감독은 이명세 감독에게 “(편집본에) 내러티브는 없고 이미지만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하고 억지스럽다”면서 “우리가 처음 의도했던 영화와는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 같”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이명세 감독은 이에 동의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그는 주위에 JK와 투자사 CJ가 자신의 창작권을 침해한다고 알렸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김성훈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명세 감독과 JK의 입장 차이는 매우 크다. 과연 양자가 어떤 식으로 영화를 찍기로 합의했는지, 촬영분이 그 합의에 걸맞은 것이었는지, 의사소통을 거부한 것은 누구인지 등등. 그러나 나는 시시콜콜 ‘진실 게임’을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이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명을 해고하는 사유로는 충분하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외려 내가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JK와 CJ가 왜 이명세 감독을 이 프로젝트의 선장으로 임명했을까에 관한 것이다. 신인감독이라면 몰라도 기성감독과 함께한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거기에는 그의 스타일을 존중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주 이 자리에서도 말했듯이 이명세 감독이 ‘비주얼리스트’라는 사실은 상식에 가깝다. 그렇다면 제작사와 투자사는 애초부터 그런 점을 어느 정도 감수할 의향을 갖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 입장에서 영화의 방향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윤제균 감독의 의지로 성사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CJ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명세 감독을 연출자에 앉혔고 투자도 받아냈다. 하지만 “내러티브는 없고 이미지만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색하고 억지스럽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디렉션’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기본이 안돼 있다는 말인데, 편집본을 본 김성훈 기자에 따르면 20분 남짓한 그 영상은 이명세 감독 스타일 그대로라고 한다. 이명세 감독이 그의 말을 하차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게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궁금해진다. 그들은 왜 함께하려 했을까.

아무튼 이번 사태가 영화계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다. 한 중견감독의 이야기는 충무로의 걱정을 드러낸다. “감독은 항상 더 좋은 영화를 찍으려는 부담감을 갖게 마련인데, 이번 일을 보고 나니 앞으로는 어떤 장면을 찍을 때 이 장면이 자본의 입맛에 맞을까를 먼저 생각하고 부담을 갖게 될 것 같다. 감독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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