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1965년생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12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제8회 세계문학상 당선
“고백하건대, 나는 나쁜 남자다.” 전민식의 데뷔작인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의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소설을 쓰겠다는 일념으로 처음 들어갔던 대학을 그만두고 방랑생활을 하며 47살이 된 지금까지 꿈을 접지 않은 그의 곁에서 힘이 되어준 모든 사람에게 하는 그만의 사과법이기도 하다. 작가와 주인공의 이력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자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인생을 산다는 일에 대한 흥미진진한 보고서와 같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의 주인공은 임도랑이라는 남자다. 한때 컨설턴트로 제법 잘나갔던 그는 지금 고시원에 살고 있다. 추락의 이유는 산업스파이였던 애인 진주. 추락하는 데는 날개가 없다더니, 산업스파이의 오명을 쓰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과거를 묻지 않고 몸만 있으면 되는 각종 육체노동뿐이었다. 개 산책시키기, 식당 불판닦기,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 쳇바퀴 돌 듯 반복될 것만 같던 그의 일상은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티베트 사자견과 함께 변화를 맞는다.
-영화화 얘기가 있다고 들었다. =아직 여기저기서 얘기가 들어오는 단계다. 예전에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1년 정도 한 적이 있다. 결국은 무산되었지만 그때 느낀 게, 원작 소설이 있는 시나리오가 완성도가 높구나 싶더라.
-<뉴욕타임스>에 실린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사진을 보고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를 구상했다. 사진의 어떤 점 때문이었나. =그때 미국 상황이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인가 그랬다. 그때 미국 젊은이들이 실직을 많이 했고, 청년들은 취직 자체가 힘들었다. 고학력자가 다른 일거리가 없어 개를 산책시키는 일이 많았다더라. 미국에서는 개 산책이 일반화된 아르바이트이기도 하고. 금융위기 직후 그런 상황이 펼쳐지는 상황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모티브가 하나 더 있다면,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한 참회의 감정이 주인공의 후회, 회한이라는 감정을 잡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주인공이 책 읽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 책 쓰면서 어떤 책들을 읽었나. =레이먼드 카버, 레오나르도 파두라,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아베 고보, 르 클레지오, 오르한 파묵. 이 책 작업할 때는 우연한 일이지만 한국 작가의 책은 읽지 않았다. 고전으로 분류되는 책을 많이 읽는데, 고전적인 스타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작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미국 작가 중 잭 런던도 좋아한다. 한국 작가 중에는 <탈출기> <홍염>을 쓴 최서해를 좋아한다. 카프(KAPF) 계열로 분류되는 작가지만 지금 읽어도 손색없는 이야기를 잘 썼던 작가다.
-영향을 받을까 우려해 글 쓸 때 소설을 부러 안 읽는 작가들도 있던데. =특이한 체질이라고 할까, 영향을 잘 안 받는다. 내 색깔만 가져가는 편이고. 나와 아내(제3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는 할머니와 산다>의 최민경 작가)가 다른 점이다. 내가 읽는 글에서 영향을 받는 것을 굳이 꼽자면 “아, 인생을 이렇게 볼 수 있구나” 하는 정도. 지금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읽는데 미스터리적인 것보다는 인간을 보는 시선에 중점을 두고 읽는다. 읽다보면, 인생은 쉽게 변하지도 않고 변하기도 힘들다는 자조적인 마음이 든다.
-아내와 서로 소설을 읽고 리뷰해줄 텐데. 가장 많이 지적받는 것은 무엇인가. =여자. (웃음) 왜 꼭 여자를 등장시켜서… 그건 좋은데, 독자가 상상할 여지를 안 주고 너무 자세하게 글래머러스하게 그린다는 말을 듣는다.
-오랫동안 글을 썼지만 47살이 된 올해가 되어서야 문학상을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식당 불판닦기부터 이삿짐센터 일도 오래 했고, 웨이터와 주방장, 미군 하우스보이를 비롯한 다양한 일을 해왔고, 대필작가로도 책을 많이 냈는데. 오랜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은 힘은 무엇이었나. =태어날 때부터 견디는 힘을 강하게 갖고 태어난 것 같다. 처음 떨어졌을 때는 좌절한 정도가 아니고 1주일 정도 폐인이 되다시피했지만 언젠가는 세상이 알아줄 테니 써서 떨어지면 자산이 된다고 마음먹었다. 이번 작품도 출품한 뒤, 별 기대없이 다음 작품 준비하고 있다가 당선 통지를 받았다. 그간 각종 문학상 최종심에만 9번 정도 오른 것 같다. 한두표 차이로 떨어진 경우가 지난해에만 두번 있었다. 최종심에 오르지 않은 작품까지 하면 20번 정도 떨어진 셈이다. 기존 출품작을 살짝 손봐 다시 낸 경우는 한두번 정도고 매번 새로 썼다. 문학상 심사위원들이 한곳에서만 심사하는 게 아니니까, 매번 작품을 새로 쓰고 다른 이름으로 출품한 적도 꽤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는 한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글 쓰는 사람에게 대필은 어떤 의미에서 최악의 일이라는 느낌도 있다. 글을 쓰면서 마모된다는 고민도 했을 텐데. =해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더라. 게다가 나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었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없어서 동네 도서관에 가서 썼다. 심지어 대필조차 일이 없으면 노동판에 나가야 했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최악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번 이뤄본다는 오기, 독기 같은 게 있었다. 그렇게 대필로 세상에 나온 책만 50권이 넘는다. 그중에는 10만부 넘게 팔린 책들도 있고.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에 등장하는 역할대행업체 소장인 삼손이라는 캐릭터가 생생하고 입체적이더라. 실제 모델이 있나. =모델이 있다. 반은 실제대로 반은 상상으로 만들었지만, 정말 삼손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서른이 다 되어 추계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가방 두개 들고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돈이 없어 생활이 안되니까 학교를 3일만 가고 다른 날은 주로 이삿짐센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나갔던 이삿짐센터 소장이 삼손이었다. 원래 공장에 다니다가 사고를 당해 한손에 손가락이 세개씩만 남았다고 했다. 별명이 삼손이었던 이유는 괴력의 사나이여서인데, 피아노가 못해도 200kg 정도 되는데 혼자 들고 부려놓는다. 뿐만 아니라 박식했고, 말도 잘하고, 과거의 내막이 많이 감춰져 있기도 했고. 그런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이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의 성격을 떠나서 글을 만지는 시간 자체가 압도적으로 많을 텐데 작업시간은 어떻게 조정하나. =요즘엔 술자리가 많아서 늦게 일어나는데, 평소에는 6시쯤 일어난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일어나 움직이는 시간이 8시 반 정도다. 아내도 그때 같이 움직인다. 그사이 2시간 반은 오로지 내 작업만 한다. 10시부터 점심때까지는 남의 일을 한다. 오후에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밤에는 집에서.
-인터뷰할 때, 이력에 너무 집중해서 얘기되는 데 대한 불만은 없나. =있다. (웃음) 내가 아내에게 공언한 일이 있는데, 내가 상을 받거나 등단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내 작품을 알리고 팔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남이 청탁하기만을 기다리지 않겠다고 미리부터 결정했다. 내 원고를 들고 개가 되든 새가 되든 찾아가서 검토해보라고 찾아다니겠다고. 인터뷰를 하는 것도 내 책을 알리기 위해서다. 어떤 방법으로든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놓으면 다음 책 나올 때도 도움이 되겠지 생각한다. 그래서 관심의 초점이 이력에 맞춰지든 소설에 맞춰지든 개의치 않는다.
-어떤 글을 쓰고 싶나. =문학사에 남겠다는 욕심보다는 당대를 잘 읽는 작가가 되고 싶다. 현재 상황이 최악으로 떨어져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쓰고 싶다. 지금까지 써왔던 작품들이 그랬다.
-요즘 한국사회를 살면서 가장 고민이랄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 쓸 작품에 영향을 미칠 텐데. =현재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신자유주의다. 단순히 얘기하면 세상이 돌아가는 모든 논리를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 결과는 뻔하다. 돈 있는 사람들만 더 부자가 될 수 있고 빈부차는 더 극명해지고. 문제는 문화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논리에 의해 생산된다는 것이다. 오락성 짙은 작품만 생산되고 예술적 본령은 외면당하고 소비자도 그렇게 길들여지고. 문학이 주는 힘은 인간이 왜 존엄해야 하는가를 말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존엄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면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무시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문화적으로 깨달으면 타인의 인간적 존엄을 깨닫게 된다. 부당한 것에 항거하는 힘은 거기서 나온다.
-그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실직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친구가 이 책을 읽더니 “그러면, 나처럼 살면 희망은 없다는 거냐”고 묻더라. 나 스스로 질문을 해봤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일은 무엇일까. 어떠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살아내는 것 아닐까. 결국 벗어나기 힘든 모든 억압적인 상황에서 살아낸다는 것은 내가 대항한다는 뜻이기도 하거든.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친구에게 말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희망은 없지만, 살아내는 게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는 것이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는 전민식 작가의 이력과 겹치는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을 보면 자전적인 느낌이 있고, 주인공이 느끼는 회한이라는 감정이 굉장히 생생한 게 그간의 연륜을 보여준다. 이전에 문학상에 냈던 작품들도 자전적인 내용이었나.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이다. 손을 봐서 금방 책으로 낼 수 있겠다는 작품이 지금 네편 정도 되는데, 한편은 범종을 만드는 한 광인의 이야기, 한편은 풍수사와 무덤에 대한 이야기, 또 한편은 양수발전소에 얽힌 이야기, 이런 식이다. 대필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직업군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 곧 다음 소설을 출간할 예정인가. =지금 전에 썼던 작품을 수정 중이다. 인터넷서점 연재 얘기도 있고, 이르면 가을쯤에는 다음 책이 나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