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Review] 꿈 속의 여인
2002-01-22

시사실/꿈 속의 여인

■ Story

1938년 스페인은 파시스트 집단인 프랑코 정권에 대항하여 공화파가 맞서 일어나고 이를 전 유럽의 양심적인 지식인이 지지하는 내전 상태다. 독일 나치 선전부 장관이자 히틀러의 오른팔인 괴벨스는 스페인-독일 합작영화를 만들어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민중을 장악함으로써 ‘유대인의 소굴’인 할리우드를 무력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이에 따라 여배우 마까레나(페넬로페 크루즈)를 포함한 일군의 스페인 영화인들이 베를린의 거대 스튜디오인 우파(UFA)를 방문하여 뮤지컬영화를 찍게 된다. 마까레나는 이내 여러 남자들의 ‘꿈의 여인’이 된다.

■ Review <꿈속의 여인>은 전쟁을 피해 영화 좀 찍어보겠다며 히틀러 정권의 품에 안긴 한 무리의 의심스러운 영화인들을 통해, 2차대전 무렵 스페인 역사의 특정한 순간을 다큐멘터리와 멜로드라마풍으로 뒤죽박죽 불러들인다. 또한 극중에 영화 찍는 장면을 포함시킴으로써 거대 스튜디오 시절의 유럽영화산업을 회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스페인에서 흥행과 평판에서 모두 성공한 것은 블랙코미디의 묘미 덕분이었을 것이다.

천하대란이 벌어지던 시기에 당신과 나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은 아직도 유럽인들의 집단적 자의식에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꿈속의 여인>에는 비겁하고 우유부단한 스페인 영화감독, 돈과 권력을 앞세워 돌진하는 독일인 괴벨스, 유대인 수용소에서 조만간 죽음을 맞게 될 러시아인 엑스트라 레오, 제각각 내세우는 명분 뒤에 숨어서 실제로는 소란스러운 속물로 살고 있는 다수의 여러 유형의 인물이 등장하고 조롱당한다.

그러나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은 스페인 사람들의 양심을 가혹하게 찌르기보다 정치적·멜로드라마적으로 따뜻하게 위로하는 길을 택한다. 괴벨스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희생을 감수하려는 아름다운 여배우 마까레나와 유대인 레오를 짝지어 주고, 스페인 영화감독으로 하여금 마지막 용기를 발휘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마무리지었다. <카사블랑카>의 매혹을 의식했음직한 마지막 장면을 비롯하여 몇몇 상투적인 순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꿈속의 여인>이 사랑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코미디의 상당부분을 제대로 즐기기는 어려운 것 같다. 예컨대 영화에 묘사된 동성애나 외국인 혐오증이 그들로서는 웃고 넘길 수 있는 옛이야기인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지나치게 심각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극중의 통역 과정에서 일어남직한 말의 재미도 다 놓쳐야 하니, 배꼽을 잡고 떠들어대던 유머를 다른 자리에 가서 옮기려다 썰렁해지는 사람의 심정이 된다. 그래도 니콜 키드먼으로부터 톰 크루즈를 빼앗았다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그리도 예쁜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는 쏠쏠하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