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인들은 1929년보다 더 심한 경제위기 속에 살고 있다.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휘발유 가격만 보더라도 2000년에 비해 70%, 경유는 100% 인상됐다. 2000년 1.05유로하던 휘발유는 지난해 1.54유로, 올해 1.85유로로 올랐다. 경유는 2000년 0.89유로에 비해 지난해 1.41유로, 올해 1.75유로로 인상됐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올해 계속해서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다른 물가도 모두 인상될 조짐이다. 이런 경제위기 속에서 한꺼번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내기나 도박이 성행 중이다. 아무리 국가에서 인기 연예인을 출연시켜 ‘도박을 하지 마세요. 인생 망칩니다’라고 광고를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2011년 이탈리아 사람들은 영화관에 가기 위해 6500억유로를 소비했고 누구나 집에서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온라인 포커 게임을 하기 위해 5500억유로를 소비했다. 온라인 포커 게임으로 가족당 25유로를 소비한 셈이다(참고로, IMF가 이탈리아 채무위기를 막기 위해 마련한 금액이 최대 6천억유로, 즉 930조원이다). 이탈리아의 경제 전문가들은 2012년 인터넷상의 게임이나 내기로 4400억유로를 소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수요는 로또나 경마, 축구 내기는 제외한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영화 관람만큼 많은 돈을 소비하는 온라인 포커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 <포커 세대>(Poker Generation)가 4월 이탈리아에서 개봉한다. 뮤직비디오를 만들던 1980년 태생의 잔루카 민고토 감독의 데뷔작이다. <포커 세대>는 성격과 행동이 완전히 다르지만 형제애로 똘똘 뭉친 토니와 필로 형제가 포커 게임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린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대체로 영화가 제작되면 영화사전심의위원회의 심사와 등급분류 과정을 거치게 되고, 미성년자 관람 금지 판정을 받으면 제작사가 심의위원회나 여론에 부당함을 호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포커 세대>는 반대다. 이 영화는 심의위원회에서 특정한 금지 없이 통과되었다. 그러자 18살 이하 미성년에게 금지된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왜 전체 관람가냐며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도박을 영화로 만들어 누구나 관람하게 만드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과연 <포커 세대>를 둘러싼 이탈리아인들의 논란은 어떤 결말을 맺게 될까. 그보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지금 이탈리아 사회의 무의식을 어떤 식으로든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지난 역사를 다룬 두편의 신작
<대학살 소설> <디아즈> 4월 이탈리아 극장가에는 두편의 치열한 역사영화도 개봉 중이다. 마르코 툴리오 조르다나 감독의 <대학살 소설>(Romanzo di una Strage)은 1969년 12월12일 폰타나 광장 농업은행 폭탄 테러를 다룬 영화다. 그 시절 이탈리아에서는 정치 테러리스트들의 폭탄 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감독은 “이 사건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역사를 제대로 해석하길 원한다. 쉽게 말하고 쉽게 언급되는 역사를 믿지 말아야 한다”고 영화를 만든 의도를 전하고 있다. 역사의 현장을 다시 비추는 또 다른 영화는 다니엘레 비카리 감독의 <디아즈>(Diaz)다. 이 영화는 2001년 7월20일 제노바 G8정상회담 반대 시위에 참가한 학생과 경찰의 대치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 대학생의 죽음을 부른 이 시위에서 학생들은 시위가 끝나고 여러 학교에 나누어 투숙했다. 시위대가 잠든 사이 경찰은 디아즈 학교에 잠입해 학생들을 무참히 발로 짓밟고 구타했다. 평단은 “귀가 멍할 정도로 크게 외치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무성인 영화, 그 시기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무능력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 공포스러운 현실을 증언하는 영화”라고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