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에세이집은 밀란 쿤데라가 살면서 만나고 영향받은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대해, 단순히 좋아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근원적인 의미에서 애착을 갖고 말하고 싶기 때문에 굳이 글로 써야 했던 예술의 이야기다. 밀란 쿤데라 전집 중에는 14번째다(현재 이가 빠진 상태로 <농담>부터 <삶은 다른 곳에> <웃음과 망각의 책> <불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느림>이 먼저 출간되었다). 첫 번째 글인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1부 ‘화가의 난폭한 몸짓’, 실존 측정기로서의 소설 몇편을 살피는 2부, 아나톨 프랑스에 대한 글부터 라블레와 베토벤을 경유하는 3부와 4부 등 이 책은 회화, 시와 산문, 음악, 그리고 예술의 사회참여를 두루 다룬다. 야나체크의 이름이 하루키의 <1Q84>로만 알려져 안타깝던 차에 7부 ‘나의 첫사랑’은 거의 수호천사를 발견한 기분이 들 정도로 멋지게 쓰였고,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한 1장은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다시 읽고 싶은 글이다.
니체의 영원회귀라는 개념으로 다짜고짜 시작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지만 <만남>은 친절함과 거리가 멀다. 개념어가 등장하고 거기에 주석을 달 듯 말하는 방식은 밀란 쿤데라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 책 전체가 20세기 말 지식인으로, 예술가로 유럽에서 산다는 일에 대한 소회를 정리하며 21세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았다. 책을 제법 읽은 사람이라 해도 낯선 고유명사들 앞에서 수시로 길을 잃으리라. 이 책의 마지막인 9장은 사르트르에 20여년 앞선 ‘참여작가’로서의 말라파르테와 그런 성격을 잘 읽을 수 있는 <가죽>을 상세하게 들려준다. 문장을 따라가다보면 말라파르테의 현대성과 문제의식에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내가 직접 <가죽>을 읽을 기회를 갖게 된다면 이런 풍부한 함의를 다 들여다보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다.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피렌체 한 성당의 높은 계단에서 공산주의 빨치산 한 무리가 (어리다고도 할 수 있는) 젊은 파시스트들을 차례대로 처형하고 있다. 유럽인의 역사에서 근원적인 전기를 예고하는 장면이다. 건드릴 수 없는 결정적인 국경선이 이미 승자에 의해 그려졌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간에는 살육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전쟁은 죽어가고 있었고, 시작되고 있는 것은 이탈리아인들 사이의 학살이었다.’ 증오는 국가들의 내부로 숨어 들어간다.” 이야기가 담은 사건의 시간은 짧지만 그 속에서 무한정 긴 인간의 이야기를 읽고, 과거에 죽은 자들과 당대에 죽은 자들과 미래에 죽을 자들을 응시하고, 그들의 조롱을 마주한다. 쿤데라는 <가죽>을 에세이의 형식으로 다시 쓰다시피 한다. 한 예술작품에 대한 개인적 술회는 역사라는 잔뜩 찡그린 시선, 비웃음, 냉소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소설의 아름다움을 (쿤데라 특유의 종종 젠체하는 문체로) 경험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