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트위터 민심과 나꼼수 영향 등에 따른 ‘착시현상’이 있었나보다. 야권이 아주 많이 이길 줄 알았는데, 새누리당이 1당은 물론 과반 의석까지 차지할 줄이야. 기실 표나게 뭉친 쪽은 큰 표를 더하지 못했고, 표 안 나게 뭉친 쪽은 뒷심을 보여줬다. 인정한다. 박근혜의 승리다.
소소한 ‘자족거리’들이 없진 않지만, 많은 이들의 입맛이 쓴 것은, 이 정도로 나라를 말아먹은 이들을 심판하는 선거에서 고작 이 정도의 싸움밖에 하지 못했나 하는 자괴감 때문일 거다. 소심한 나는 친구에게 “내가 너무 놀았나봐”라는 자학 문자를 보내기도 했는데, 내 주변에는 그런 ‘소심한 녀석들’이 넘쳐난다. ‘쓰레기 재철이’를 못해서, ‘인규산성’을 그냥 지나쳐서…. 그중 압권은 ‘아이폰 사고는 보던 신문을 끊어서…’였다. 어쨌든 정신이 번쩍 든다.
정치에서 이변은 어지간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걸 넘어서는 것은 유권자가 ‘감동’했을 때이다. 2002년 딱 한번 경험했던 것 같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은 박근혜의 부은 얼굴과 재방송 같던 붕대 감은 손만큼의 감동도 주지 못했다. 그야말로 ‘매스미디어’상으로는 볼 게 없었다. 방송 기자와 PD들이 파업을 하지 않았으면 달라졌을까? 개표방송 사고는 덜 났을지 모르지만 낙하산과 낙하산 쪼가리들이 장악한 방송 내용이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이 경쟁적으로 내건 복지 확대와 경제 민주화를 놓고 지지고 볶고 시비를 가려도 시원찮을 때, 주요 뉴스는 청와대 안주인이 외국 ‘싸모’들을 모시고 박물관에서 무슨 음식을 대접했는지를 미주알고주알 전했으니까. 방송의 아젠다가 ‘매스’하게 왜곡되는 동안, 점퍼 색깔을 바꾼 당은 1인 치하의 컨트롤타워를 착착 가동했다. 박근혜 위원장이 승리 제일성으로 ‘불법사찰 방지법 제정’을 꺼냈을 때에는 엄마야, 심지어 감동받을 뻔했다.
‘아버지 그늘’과 ‘뒷설거지’ 외에는 ‘자기 정치’를 해본 적이 없는 그가 과반의석의 수장으로 출발한 19대 국회에서 어떤 정치력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첫 시험문제는 사상 초유의 언론사 동시파업 해결일 것 같다. 총선 뒤 기자회견을 마치고 언론사 부스를 돌며 인사하다가 “연합뉴스가 파업을 왜?”라고 질문하는 걸 보니, 갈 길이 멀다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