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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프린지’ 백팩을 떠올리다

<건축학개론>의 제우스 티셔츠를 보고

대학교 1학년 채플 시간, 내 옆자리는 하필이면 음대생 무리의 차지였다. 커다란 첼로 가방이나 앙증맞은 관악기 케이스를 들고 다니던 그녀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악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주눅들게 하기 충분했건만 머릿결은 왜 그렇게 눈부시던지…. 종아리는 또 어쩜 그렇게 날씬하던지…. 채플 시간만 되면 나는 벽난로를 청소하고 난 복장으로 파티 가는 이복 언니를 배웅하는 신데렐라처럼 처참하고 초라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피부, 몸짓, 표정, 가진 물건… 그녀들과 관계된 것이라면 어느 하나 부럽지 않은 게 없고, 대단해 보이지 않는 게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부러웠던 건 프라다 백팩. 사이즈는 각기 달랐으나 색깔도 모양도 똑같은 명품 백팩을 등에 대롱대롱 매달고 다니는 음대생 무리를 선망의 눈길로 지켜보기를 한달여. 나는 큰맘먹고 남대문의 어느 가방 가게를 찾아가 진품과 똑같다는 짝퉁 프라다 백팩을 샀더랬다. 주인 아저씨가 (‘프라다’ 아닌) ‘프린지’ 로고를 단 가방을 가게 깊숙한 곳으로 가지고 가 ‘프라다’로 바꿔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어찌나 가슴이 쿵쾅대던지! 거금 3만5천원을 아저씨에게 건네며 “정말 진짜랑 똑같죠?”라고 물었다가 “그러엄! 매장 직원들도 잘 몰라!”라는 대답을 들었을 때는 또 어찌나 행복했던지….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난 어쩜 그렇게 가난했는지…. 왜 그렇게 순진했는지….

<건축학개론>을 보는 동안, 나는 남들이 웃는 장면에서도 혼자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는데 그건 승민에게서 내 생애 가장 가난하고 힘들고 ‘지질’하던 때의 모습을 발견한 탓이리라.

승민은 그게 짝퉁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서연을 만날 때마다 ‘GEUSS’ 티셔츠를 입었지만 그가 짝퉁 티셔츠 때문에 놀림거리가 되고 상처받았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승민이 가짜 티셔츠를 입은 것에 대해 서연이 전혀 개의치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거부의 조짐만으로도 으레 겁먹으며 스스로의 모습을 거부해버리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삶 속에서 저지르는 진짜 실수가 아닐는지….

그래서 나는 오늘 다시 결심한다. 그 시절의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때의 나를 부정하지는 말자고. 그 시절, 내 모습이 다소 촌스럽고 실수투성이였더라도, 내가 모르는 누군가는 그 자신만만하던 나를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그런 내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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