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처음 제대로 알게 된 사연은 몇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방송을 같이 하던 라디오 PD가 방송시간을 기다리며 ‘아는 동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아는 기자 중에 정말 재미있는 애가 있어.” 당시 주변 사람들의 잇단 자살로 언론을 피하던 여자 연예인의 독점 인터뷰 기사가 어느 주간지에 실린 직후였는데, 그 인터뷰를 성사시킨 게 바로 그 ‘재미있는’ 기자라는 말이었다.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는 이제 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요점만 말하면 아무와도 말하지 않겠다고 하는 ‘누나’들을 인터뷰 자리로 끌어내는 데 특출난 재능이 있다고 했다. 그가 일하던 잡지의 창간호에 실린 신정아 인터뷰 특종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대체 어떤 비결이 있기에 그런 독점 인터뷰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라, 들어주겠다. 그리고 어떤 편향성도 갖지 않고 기사를 쓰겠다”는 신뢰를 심어준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 “말하는 게 착하고 어수룩한데 열심히 설득한다” 어쩌고 하는 말이 덧붙었다(<나는 꼼수다>를 듣고 ‘누나’ 전문 기자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아 많이 웃었다).
비결이랄 것도 없고 어찌보면 당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말이지만 언론사에서 일하다보면 그게 말같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누구나 ‘입맛에 맞는’ 방식의 ‘섹시한’ 이야기를 원한다. 이슈가 되는 인물, 이름값이 높은 인물일수록 기껏 진솔하게 털어놓은 말은 자극적으로 포장되기 십상이고, 하지 않은 말도 묘하게 앞뒤 잘라 실어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리곤 한다. 애초에 긴 분량의 인터뷰를 일정한 양에 맞추는 일부터가 취사선택을 전제로 하는데, 취사선택의 기준은 해당 언론사의 데스크(기사의 방향성에 대해 기자보다 더 큰 권력을 갖는)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성향에 좌우된다. 진솔한 인터뷰를 약속한 것과 별개로 기사가 찐따처럼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기자도 회사원이라고 변명하며 적당한 타이밍에 데스크를 핑계로 취재원에게 등진다는 말이다. 주진우 기자가 오랫동안 숨어다녔던 ‘누나’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말을 지켜왔기 때문이고 그의 정직을 뒷받침할 만한 매체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팩트는 팩트다. 인터뷰를 통해 그 사람의 말을 전한다. 취사선택과 가치판단은 읽는 자의 몫이다. 그가 완전한 중립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종교와 대기업을 비롯한 기득권의 비리에 대해 날을 세우는 그가 듣는 말은 다름 아닌 ‘사탄 기자’ 아니던가. 주먹을 휘둘러야 할 때, 짱돌을 쥐어야 할 때는 망설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가장 능숙한 싸움꾼일지도. 주진우의 <주기자>는 신정아 사태, 장자연, 순복음교회 세속, 김용철 변호사와 삼성 특검, 에리카 김과 BBK 메모 특종, 그리고 최근 나경원 1억원 피부과와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논란을 취재했던 기사와 그 뒷이야기를 묶었다. 재미있지만 뼈아픈 책이다. 방송사 파업이 기약없이 길어지는 지금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