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르는 한국시장에서 정말 불가능한가? 각각 좀비, 로봇, 종말론을 다룬 세개의 단편은 익히 알고 있는 할리우드 SF 세부장르의 한국적 변용을 꾀한다. 이야기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버린 음식물이 초래한 재앙을 통해,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로 초토화된 도시를 그린 임필성 감독의 <멋진 신세계>, 천상사라는 절을 배경으로 로봇의 깨달음을 믿는 스님들과 단순 고장이라고 믿는 제조사간의 대립을 통해 미래 로봇사회에 닥친 존재론적인 문제에 접근한 김지운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 그리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8번 당구공이 2년 뒤 지구의 존폐를 위협하는 거대한 혜성이 되어 돌아오며 겪는 혼란을 그린 임필성 감독의 <해피 버스데이>. 이렇게 세편의 단편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변주를 하고 있지만, <인류멸망보고서>는 100% 성공적이지 않다. 광우병과 정치풍자를 엮어낸 <멋진 신세계>의 시도는 시기적으로 뒤늦었으며, 철학적 고민에 빠진 <천상의 피조물>의 로봇은 할리우드 장르소설의 반복에 불과하다. 특히 짧은 단편에 이 모든 걸 대사로 풀어낸 <천상의 피조물>은 지루함을 가중시킨다. 전체적인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몇몇 성과는 되짚어볼 만하다. <멋진 신세계>에서 좀비 창궐로 초토화된 서울의 이미지나 <천상의 피조물>에서 보여준 미래사회와 아시아적 종교의 결합은 더 집중적으로 발전시킬 만한 부분이며 이 영화의 기능도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앞선 두편에 비해 기술적 성취 면에서 두각을 나타낸 <해피 버스데이>를 통해 한국형 SF 장르에 대해 섣부른 종말이 아닌 미래를 이야기해볼 계기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