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인류가 종말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4월인데도 눈이 오고 강풍과 돌풍이 몰아치고 기온이 영하에 가깝다. 트레일러까지 날려버리는 토네이도를 맞은 미국이나 서쪽 지역의 대지진이 예고돼 있는 일본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한국의 날씨도 지긋지긋한 겨울을 떨치고 봄을 누리고픈 우리 기대를 저버린 채 마구 날뛰는 꼴이 심상치 않다. 이러다가 교과서에 ‘한반도는 봄-초여름-여름-한여름-늦여름-가을-초겨울-겨울-한겨울-늦겨울의 뚜렷한 10계절을 특징으로 한다’는 구절이 실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기분이 울적해도 갈 길은 가야 한다. 다음호로 17살이 되는 <씨네21> 또한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그런데 대체 이 말은 누가 한 거랍니까?) 심정으로 창간기념호와 지면 개편을 준비 중이다. 사상 최대의 기대 속에서 개막하는 프로야구나 온 국민이 관심을 쏟고 있는 4·11 총선을 능가하는 화젯거리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잠깐이라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겠다는 각오로 고치고 만지고 주무르고 있다. 우리의 최선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닿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창간기념 특집과 기획도 알차게 꾸미는 중이다. 지금 당장은 여러분께 ‘비주얼 쇼크’를 안겨드릴 야심찬 꼭지가 있다는 정도만 귀띔해드리겠다.
개편으로 지면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그동안 함께했던 필자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 ‘전영객잔’을 2년 동안 책임져온 남다은, 안시환, 장병원 평론가께는 깊은 통찰과 번뜩이는 감각을 발휘해준 것을, ‘시네마 나우’를 이끌어왔던 김지석, 유운성 프로그래머께는 미지의 영화들을 상세히 소개해준 것을 감사드린다. ‘가젯’ 지면을 통해 새로운 기기를 소개해준 서범근씨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들과 우리는 언젠가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돼 있으므로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다시 한번 뜨거운 사의를 표하는 것으로 인사를 마무리하겠다. 그리고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진중권의 아이콘’, ‘김중혁의 No Music No Life’, 이용철, 김종철 평론가의 ‘DVD’ 등 지면은 새로운 모습으로 리노베이션될 예정이다. 다음주에 이 지면과 또 다른 지면을 통해 개편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드릴 터이니 궁금해도 잠시만 참아주시길.
늦어서 짜증이 나긴 하지만 결국 꽃은 피게 마련이다. 사무실 부근 남산 한옥마을 공원에도 산수유 꽃이 거센 바람에 떨면서도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다시 눈이 오건 서리가 내리건 개나리, 철쭉, 목련, 벚꽃이 차례로 필 것이다(그러곤 바로 여름이 시작된다는 게 문제겠지만). 그에 맞춰 승부조작 파동을 겪은 프로야구가 활짝 만개할 것이고, 오랜 시간 풍파를 겪은 한국 정치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개화(開花)할 것이다(다시 겨울로 돌아가게 하진 맙시다!). 그렇게 <씨네21>도 봄꽃처럼 팔팔한 17살 청춘으로 피어나고자 한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