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서부터 진작에 만개해 밀고 올라와야 할 봄꽃들이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서둘러 맞으러 갔다, 바람만 맞고 왔다. 봉오리도 못 맺혔거나 봉오리째 얼어 있는 것들이 많았다. 단지 추워서일까.
꽃들도 놀랄 대형 이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온다. 불법 사찰 면피한답시고 ‘전 정권이 더 했다’고 적반하장 우겨대다 자세한 내용이 밝혀지자 청와대는 다시 붕어입이 됐다. 아무리 사찰에 감찰을 뒤섞어본들 죽밖에 못 쑨다. 비닐포장도 뜯지 않은 관봉 돈뭉치 증거도 나왔다. 정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방증이다. 여권에서도 ‘하야’ 얘기가 나올 정도이니, 당장 하야하지 않는다 해도 퇴임 뒤가 심히 걱정된다. 지금도 폭발력 있는 물증들이 차고 넘치는데, 얼마나 더 못 볼 꼴이 드러날까. 눈 썩겠네. 부디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일괄 땡처리’로 갔으면 싶다. 하루빨리 인간의 세상에 살고 싶거든. 정체성을 논하고 선명성을 따지기에는 이 설치류의 세상이 진짜 지겨워.
이 모든 일의 배후가 ‘청와대 뒷산’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 청와대 뒷산에 올라… 수없이 내 자신을 돌이켜”보신 그분, 혹은 그분의 미니미들은 촛불의 배후를 캔다며 사정?권력기관을 총동원한 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 총리실에 바지사무실을 두고 비선조직을 가동해 깨알같이 꼼꼼하게 사람들을 감시했다. 반대 세력은 물론 그저 미운 애들까지 마구잡이로 파파라치했다(각 동네 아파트 펜트하우스 입주자 현황은 왜 조사한 거니?). 그 바지사무실 이름에 ‘공직’, ‘윤리’가 들었다는 점에서 키치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검찰과 법원은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아, 꼬리 자르고 봉합 바느질 몇땀). 그 ‘뒷산’, 넓고도 섬세하다.
일찍이 정주영 할배가, 각하가 정치에 뛰어들며 재산신고를 했을 때 “어허, 이놈 봐라. 뒤에 0을 하나 뺐네”라고 했단다. 사업은 족족 말아먹어도 투기는 대박을 냈다. 최고권력자가 된 것도 나라살림으로 한탕 노린 거라는 말, 뉴타운부터 4대강까지, 그와 그의 친인척이 부를 부풀린 흐름을 보면 단순 비아냥이 아니다. 들통이 나면 ‘어떻게 알았지?’ 뒤를 캔다. ‘부자병’ 환상 속에 그와 그의 세력에 곳간 열쇠를 쥐어줬다. 양극화가 아니라 빈곤화와 맞닥뜨려 거듭 실감한다. 참으로 위험한 수업,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