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영화제를 개최할 최적의 장소? 인구의 200%가 넘는 사람들이 모바일을 소유하고 있는 홍콩이야말로 모바일영화제를 열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일 것이다. 올해로 2회를 맞이하는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HKIMFA: Hong Kong International Mobile Film Awards)를 다녀왔다. 거기서 홍콩영화의 미래를 보았냐고? 그보다는 영화의 미래와 홍콩의 야심을 잠시 엿봤다고 하는 편이 좋으리라.
영화는 민주화됐다. 우리의 손바닥 위에는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놀라운 카메라가 하나씩 놓여 있다. 심지어 이 카메라는 HD 화질뿐만 아니라 온갖 촬영과 편집 관련 프로그램들을 지원한다. 핸드그립 같은 부수 기기 역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맞다. 모바일영화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야기해보자는 소리다. 박찬욱, 박찬경 감독의 <파란만장>을 기점으로 한국의 모바일영화 제작 열풍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모바일 기기의 진화와 함께 영화의 DIY 시대가 시작 첸인옌된 것이다. 모바일영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국내외 수많은 단편영화제들은 손바닥 위의 기기를 이용해서 영화를 찍는 DIY 감독들의 축제이자 경쟁의 장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고, 어디서나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모토 아래 2009년 출범한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가 대표적이다.
스마트폰이라는 플랫폼의 경이
올해 2회를 열어젖힌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는 어떤 면에서 모바일영화의 오스카 시상식이라고 할 만하다. 사실 영화제라는 말을 붙이긴 했지만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는 일종의 시상식에 가까운 행사다. 전세계 11개국에서 개최되는 단편영화제(호주의 포터블필름페스티벌, 브라질의 비보아르테.무브, 캐나다의 쇼츠논스톱, 중국의 골든플라워어워즈, 프랑스의 프랑스모바일필름페스티벌, 그리스의 슛잇, 홍콩의 홍콩모바일필름페스티벌, 싱가포르의 싱가포르쇼트필름어워즈, 스페인의 모빌필름페스티벌, 타이완의 카발란국제쇼트필름페스티벌, 한국의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가 각 10편의 수상작을 출시작품하고, 일반 관객이 영화제 홈페이지와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각 페스티벌이 출품한 작품 중 1편을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한다. 그렇게 선정된 11개국 11편의 단편을 대상으로 영화제 기간 중 각국 11명의 프로그래머가 한자리에 모여 심사를 진행한 뒤 최종 수상작을 발표한다. 그러니까 한해 전세계에서 제작된 가장 우수한 모바일 단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을 뽑는 셈이다.
그런데 먼저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체 ‘모바일영화’는 무얼 의미하는 걸까? 모바일 기기만을 이용해서 만든 영화? 사실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바일 기기로 만들어진 영화만을 모바일영화로 제한하지는 않는다. 제2회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 출품작 중에는 레드원 카메라나 캐논 DSLR로 촬영한 영화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가 모바일을 영화 제작 기기라기보다는 영화의 어떤 새로운 상영과 배급의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 손쉽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라면 충분히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셈이다.
이를테면 올해 최종 심사에서 드라마 부문 은상을 차지한 스페인 단편 <침입자> (Intruso)는 디지털카메라인 캐논 5Dmark2로 촬영된 영화다. <침입자>의 제작자인 밀란 바스케즈-오르티즈는 “요즘은 스마트폰이라는 플랫폼이 재능을 가진 젊은 감독들에게 새로운 플랫폼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예전에는 단편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 그저 영화제에 한정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누구나 손쉽게 관람할 수 있다. 이런 건 디지털 시대 이전에는 거의 불가능했던 일이다.”
수상자들이 홍콩영화학교 학생들 및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컨퍼런스를 하고 있다.
대상을 수상한 한국의 <돈가방>팀. 주연을 맡은 배진웅(오른쪽 두번째), 감독 김선웅(오른쪽 끝).
수상권에 오르진 못했지만 아이폰을 이용해 가정폭력에 관한 아이러니한 단편 <세계 최고의 엄마>(Worlds Best Mum)를 연출한 프랑스 감독 제롬 즈네브레이는 “단편을 만드는 감독들에게 모바일은 혁명”이라고 말한다. “미디어의 발전은 나같은 감독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이젠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돈 없이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아주 민주적이다. 게다가 영화를 만든 다음에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많은 관객을 만나는 것도 가능하다. 이건 혁명에 가까운 일이나 다름없다.” 제롬 즈네브레이 감독이 아내와 함께 딸의 방에서 뚝딱뚝딱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엄마>는 아이폰과 유튜브가 없었다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불가능했을 영화다. 그는 2년 전 여성인권에 관한 단편을 모집하는 유럽의 한 온라인영화제를 위해 <세계 최고의 엄마>를 아이폰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고, 유튜브 이용자들에 의해 발견되어 전세계 단편영화제들을 순회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영화는 가정폭력에 관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프랑스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엄마>는 모바일 혁명이 단편감독들에게 새로운 기기와 플랫폼을 동시에 제공해줄 수 있다는 어떤 명확한 증거처럼 보인다.
왜 하필 홍콩인가?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자. 왜 하필 홍콩인가?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를 개최하는 주체는 WTIA(Wireless Technology Industry Association: 홍콩무선통신산업협회)와 HPC(Hong Kong Productivity Council: 홍콩생산성본부)다. 올해 시상식은 필름마트가 열리는 홍콩전시컨벤션센터(Hong Kong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re)에서 홍콩 통신산업계의 관료들을 잔뜩 게스트로 초청한 채 열렸다. 점점 커지는 행사의 일차적인 목표는 전세계에서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거나, 모바일 상영에 최적화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창의력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WTIA의 회장인 토쳉은 “모바일영화가 지금 세계의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되어가고 있는 만큼, 이번 홍콩모바일국제영화제가 각 나라 감독들의 창의적인 영감을 고양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장이자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 말은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를 통해 홍콩이 전세계 모바일영화의 어떤 허브가 되길 원한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홍콩특별행정구 경제 및 통신기술부 사무차관인 엘리자베스 체 역시 “거주민의 모바일 보유량이 200%가 넘는 홍콩은 모바일로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는 재능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홍콩 정부는 홍콩의 모바일 감독들이 세계 여러 영화제에 나가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또한 몇몇 작품들은 이곳 필름마트에서도 볼 수 있다. 지금 소비자들은 뉴미디어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즐기고 있다. 모바일 미디어는 정말이지 급속히 성장하는 마켓이다.”
자국의 재능을 지원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전세계 모바일영화의 허브로 구축 중인 제2회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는 한국 출품작인 김선웅 감독의 <돈가방>을 대상으로 선정하고 수상자들과 함께 모바일영화의 미래에 대한 컨퍼런스를 진행한 뒤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수상작을 포함한 모든 참가작들은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 사이트(http://www.hkimfa.com/2011/finallist.php)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이 11편의 영화들로부터 모바일영화의 미래와 모바일 허브 홍콩의 미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상작 리스트
올해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의 최종 심사대에 오른 11편의 단편은 이미 전세계 11개 단편영화제에서 대부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품들이다. 11명의 심사위원은 한자리에 모여 영화제쪽에서 제공한 모바일 기기로 11편의 영화를 감상하고 채점한 뒤, 각 단편의 감독을 한 사람씩 불러 Q&A 시간을 가진 뒤 최종적으로 수상작을 선정했다. 가장 중요한 심사기준은 물론 ‘모바일영화라는 특성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였다.
◆ 대상 <돈가방>(Money Bag) l 한국 l 김선웅 ◆ 드라마 금상 <돈가방>(Money Bag) l 한국 l 김선웅 ◆ 드라마 은상 <침입자>(Intruso) l 스페인 l 라몬 프리야스 ◆ 드라마 동상 <최후 심판의 날>(The Great Day of His Wrath) l 호주 l 사이먼 버릴 ◆ 애니메이션 금상 <허시 베이비>(Hush Baby) l 싱가포르 l 탄웨이컹 ◆ 애니메이션 은상 <모션 그래픽스 포션>(Motion Graphics Potion(藥)) l 중국 l 두후안란 ◆ 애니메이션 동상 <렐레>(Lele) l 브라질 l 카를로스 다울링 ◆ 다큐멘터리상 <충분히 게이스럽지 않았던 게이>(The Gay Who Wasn’t Gay Enough) l 캐나다 l 리노 디날로 ◆ 그외 참가작 리스트 <세계 최고의 엄마>(Worlds Best Mum) l 프랑스 l 제롬 즈네브레이 <신발 얻기>(Gain the Shoes) l 그리스 l 바실리키 추오벨리 <앨범에 대한 두세 가지 것들>(2 or 3 Things about the Album) l 홍콩 l 목완이 <게팅 로스트>(Getting Lost(失去ing)) l 대만 l 첸인옌
“곧 유튜브로 관객 만날 것”
<돈가방>의 김선웅 감독
김선웅 감독의 단편 <돈가방>(Money Bag)이 제2회 홍콩국제모바일영화제의 드라마 부문 금상과 전 부문을 아우르는 대상(Grand Award)을 휩쓸었다. <돈가방>은 한 여자와 남자가 돈가방을 빼앗기 위해 서로를 뒤쫓는 상황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리는 시간의 나선 속에 강렬하게 담아낸 스릴러다(영화는 ttp://www.hkimfa.com/2011/finallist.php?fid=68#top에서 감상할 수 있다). 김선웅 감독은 (주)하늘연못픽쳐스에서 뮤직비디오와 CF, 홍보영상을 기획, 연출하는 동시에 단편과 장편영화를 준비 중인 주목할 만한 재능이다.
-<돈가방>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뭔가. =요즘 한국인들의 돈에 대한 욕망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이 돈 때문에 배신하고 또 배신당하는 모습들을 많이 목격했고, 거기서부터 한국 자본주의의 어떤 허상을 단편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아이폰4로 촬영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이폰4가 출시됐을 때 이게 HD 화질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과연 이 기기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한번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캐논 렌즈 어댑터와 그립이 국내에 없었기 때문에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서 구입했다. 그런데 막상 기기들을 배송받고 보니 정작 중요한 연결 부품들이 빠져 있었다. 박찬욱 감독님 제작사를 찾아가서 의의를 설명드리고 필요한 부품들을 대여받을 수 있었다.
-모바일 기기를 통한 상영만을 염두에 두었던 것인가. =아니다. 처음에는 보다 큰 스크린에서 상영할 가능성도 염두에 뒀다. 하지만 아이폰4로 촬영하다보니 모바일 기기로 제작한 영화는 모바일 기기를 통해 관객을 만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다.
-컨퍼런스를 하면서 최근 개봉한 영화 <크로니클>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었는데, 이런 단편 제작이 장편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리고 단편 역시 계속 만들 예정인가. =아직 내 영화를 유튜브 같은 인터넷 매체에 올려놓지는 않았지만, 곧 업로드시킨 다음 사람들의 반응을 많이 접해보고 싶다. 이번에 개봉한 할리우드영화 <크로니클>의 감독 조시 트랭크도 유튜브에 업로드한 단편을 통해 이십세기 폭스사와 함께 일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내 영화 역시 모바일이나 유튜브 등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로 기획했고, 단편의 반응을 통해 장편으로 나아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단편 작업도 계속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지금 계획 중인 단편과 장편이 있나. =5월 즈음에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또 다른 단편을 만들 생각이다. 잔혹한 성장드라마이자 판타지다. 올해 말에 첫 번째 장편영화 역시 계획하고 있다. 옌볜의 탈북자들을 뒤쫓아서 잡아오는 일종의 북한 추노꾼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그들의 시선으로 탈북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르영화가 될 예정이다.
180만원이 만든 기적
<최후 심판의 날>의 사이먼 버릴 감독
사이먼 버릴의 단편 <최후 심판의 날>(The Great Day of His Wrath)은 영화제 기간 내내 <돈가방>과 함께 강력한 후보로 지목됐다.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 존 마틴 특별전의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이 단편은 존 마틴의 유명한 유화를 근사한 종말론 SF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를 보면서 이걸 모바일영화라고 해야 할지 근심이 들었다. =(웃음) 제작비가 얼마인지 알면 깜짝 놀랄 거다. 겨우 1천파운드(약 180만원)다.
-그 적은 제작비로 특수효과를 어떻게 구현한 건가. =지난 10년간 알고 지낸 친구 중에 시각효과 전문가가 있다. 영화의 아이디어가 좋다면 많은 특수효과 후반작업 전문회사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기꺼이 동참해줄 때도 많다.
-어떻게 참여하게 된 프로젝트인가. =테이트모던의 존 마틴 회고전 담당자들이 전시회를 위해 뭔가 드라마틱한 영상물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예산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존 마틴의 <최후 심판의 날>을 어떻게 영상화할지 고민하다가, 마지막 장면에 모든 예산과 특수효과를 퍼부을 수 있는 폐소공포증적인 이야기를 떠올렸다. 로만 폴란스키의 <혐오>와 쓰카모토 신야의 작품들을 참고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쓰카모토 신야다. 큰돈 없이 자신의 방식대로 독립영화를 만들어나가는 그의 에너지를 사랑한다.
-어떤 카메라로 찍은 것인가. =레드원 카메라로 찍었고 모바일폰으로도 몇몇 숏을 촬영했다. 레드원은 이미 업계에서는 한물간 카메라가 된 탓에 무료로 대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드원으로 여전히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내 웹사이트(www.simonburrill.com)에서 이번 단편은 물론 레드원으로 작업한 패션필름 등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