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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베르사유판 타이태닉

프랑스혁명 당시의 베르사유궁 배경으로 한 <안녕, 나의 여왕>

<안녕, 나의 여왕>

1789년 7월, 절대왕정이 지배하던 앙시앵 레짐을 무너뜨린 프랑스 시민혁명은 그간 수많은 예술 작품들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는 물론이요, 이를 둘러싼 드라마적 요소(말하자면 루이 14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전형화된 인물, 베르사유궁의 권력층과 바스티유에 집결한 시민들의 대립 구조, 시민 봉기, 그리고 286명의 처형), 여기에 왕궁의 자태를 보는 눈요기 효과까지 더하고 보면 웬만한 스펙터클이 가져야 할 모든 요소를 완전히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일 거다.

지난 3월21일, 유럽 전체의 심각한 재정위기 속에서 치러질 4월22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를 한달 앞두고 다시 한번 이 역사적 사건을 조명하는 브누아 자코 감독의 <안녕, 나의 여왕>이 개봉해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얻고 있다. 사실 브누아 자코는 한국에서 <육체의 학교>(1998)로 뒤늦게 알려졌지만 60년대 중반부터 20편에 달하는 장편 작업을 꾸준히 해온 프랑스의 베테랑 감독이다. 샹탈 토마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해 만든 이 영화에서 그는 7월 혁명 당시 4일간의 상황을 마리 앙투아네트(다이앤 크루거)에게 책을 읽어주던 실제 인물 시도니 라보르드(<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레아 세이두)의 시점으로 전달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위에서 언급한 모든 드라마적, 시각적 요소가 베르사유궁에 갇힌 채 외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전해 듣기만 하는 여왕과 그녀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로 축약된다.

카메라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머무는 화려한 성과 모기와 쥐로 가득한 하녀들의 숙소를 맴돌면서, 혁명군의 움직임보다는 286명의 처형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물들의 대화를 엿듣는다. 또, 라보르드가 두려워하는 것은 파리에서 베르사유로 다가오고 있는 혁명군이 아니라 열렬히 사모하는 여왕과 헤어지게 될 거라는 사실이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녀가 사랑했던 여인 가브리엘 드 폴리냑(비에르지니 르도엔)이 자신 때문에 처형당하게 될 거란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커다란 역사의 움직임을 세 여인의 사랑과 질투로 단순화한 것 같지만, 감독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거의 기록에 가까운 수준으로 자세히 전달해내는 데 성공한다. 레아 세이두와 다이앤 크루거의 섬세한 연기, 루이 14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신과 인간>의 감독 자비에 보부아를 보는 것도 큰 재미지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이야기가 현재 유럽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를 알아보는 데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성 안에 가뒀다”

브누아 자코 감독 인터뷰 -베르사유궁의 위생 상태를 그토록 사실적으로 그린 이유는 뭔가. =상 시몬은 자신의 저서 <기억>(Memoires)에서 베르사유궁의 썩은 비료 냄새를 직접 느낄 수 있을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당시 궁에서는 썩은 퇴사물에서 나오는 냄새를 달콤한 향수로 덮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부패할 대로 부패해서 더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된 당시의 권력처럼 말이다.

-영화 속 시간인 4일 동안 관객은 당시 성에 살고 있던 귀족들의 변화를 엿보게 된다. =타이태닉과 같은 현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믿었던 성이 하루아침에 여기저기 물이 새고 가라앉기 시작하는 거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영화의 끝에서야 성을 떠나게 되니까)에서 인물들은 엄청난 폭의 감정 변화를 겪게 된다.

-영화에서 인물들은 성에 갇혀 파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성 안에 가둔다. 그들은 이 커다란 성을 하나의 완전한 ‘나라’로 치부하면서, 국경(성벽)을 넘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침입자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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