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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그 이후는 없다

영화에서 다루는 선거에 대해

<선거>

선거에 관한 아주 악랄한 사건은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벌어졌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나쁜 경험은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 투표장에서 겪었다. 선거일 3일 전에 사퇴한 심상정 후보의 이름이 투표용지에 버젓이 들어 있었던 건 후보자의 갑작스런 사퇴로 인쇄물을 변경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고 싶다. 그런데 투표소 입구 저 귀퉁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A4 정도 되는 작은 종이 한장으로 심상정의 사퇴 공지문이 붙어 있었던 것도, 잘 보이는 곳에 공지문을 붙이기 어려웠고 큰 종이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까. 그해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무효표는 예년에 비해 3.6배인 18만표가 나왔다고 한다.

영화 <스윙보트>에서는 반대의 풍경이 벌어진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 과정 중 기계의 오작동이 일어나고 재투표를 해야 할 투표자가 발생한다. 뉴멕시코주에 사는 거의 반건달에 가까운 한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즈음 선거결과는 박빙으로 치닫고 마침내 이 남자의 표 한장으로 미국 대통령이 가려지는 상황이다. 이때부터 못 말릴 상황이 벌어진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공화당은 도시 개발 계획을 버리고 강을 살린다며 친환경정책을 내놓고 낙태를 인정하던 민주당은 이 남자가 생명 존중론자라고 짐작한 다음 갑자기 낙태반대운동 광고에 열을 올린다. <스윙보트>의 외양적 주제는 당신의 한표가 중요합니다, 이겠지만 이 영화의 재미는 대개의 선거는 당선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경우의 수들이 생깁니다, 라고 말해주는 데 있다.

여기 영화 속 경우의 수가 하나 더 있다. 소다 가즈히로가 연출한, 제목도 <선거>인 다큐멘터리에서 얼떨결에 낙하산으로 자민당 후보가 되어 당선을 위해 뛰고 또 뛰는 야마우치는 실제로 길에 서 있는 전봇대에까지 인사를 한다. 그는 능글맞게 생겼다고 남들이 흉을 보거나 말거나 집에 돌아가면 부인과 머리를 맞대고 유권자와 악수를 할 때는 흰 장갑을 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등을 고민한다.

반전은 종반부에 있다. 낙선으로 종결될 것이라 예상했으나 의외로 그는 떡하니 당선된다. 이상한 건 그의 유세 과정을 지금껏 보고 나니 그의 앞으로의 의정활동이 궁금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선거를 영화의 중심 테마나 과정으로 둔 영화들 중 당선 이후를 영화의 중심부로 다시 전개하는 영화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영화에서 선거란 일종의 거대하게 극화된 복마전이나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코미디처럼 자주 다루어지는데, 선거라는 것이 영화적 소재로서는 무궁무진하게 흥미롭지만 그 이후의 결과는 냉엄한 현실 문제라는 인식이 거기 깔려 있는 것 같다.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개그맨의 위치에서 이런 헛소리를 했다. 자신이 국회의원에 그리고 총리에까지 당선된다면 국제적으로 막말을 서슴지 않는 이시하라 신타로를 외무장관으로 기용하고 재무장관 자리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구두쇠인 개그맨을 앉힐 것이며 한국과 중국이 역사 왜곡 문제로 까불면 바로 외교를 끊어버릴 것이고 무엇보다 일본은 희망이 없으니 하루빨리 일본 국민을 난민으로 만들어 “일본 해산”을 추진할 것이라고. 현실 정치여 자극 받으라, 하면서 지껄이는 개그다. 그런데 정작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는, 일부러 정신 나간 척하는 기타노 다케시와 공약은 달라도 수준은 유사한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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