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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그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영화 <화차>의 욕망과 타자의 문제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물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그 인물에 공감하게 되는 과정을 영상으로 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지로 제시된 것은 기정사실로 인식되게 마련인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사건을 재구성하는 추리행위 자체를 화면에 옮기는 일도 역시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영화 <화차>에는 원작의 복잡한 서사와 미묘한 정서를 영화의 ‘가시적 틀’ 안에 재현하기 위한 고심의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 문호(이선균)의 회상과 종근(조성하)의 추리 가운데 경선(김민희)의 과거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신들이나 간간이 숏의 도치를 꾀한 편집리듬이 그 대표적인 예다. 어떻게 하면 좀더 대중적인 화술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정확히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고민이 오랜 각색 작업에 걸쳐 이어져왔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이같은 고민의 지점에서 감독은 장르적인 재미와 서사적인 추동력을 우선순위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차>는 첫신부터 이야기를 속도감있게 밀어붙이며 사건의 경위와 주요 인물 구도 속으로 빠르게 진입한다. 추적 과정에서 문호와 종근이 갈등과 동요를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심리적 파동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사라진 약혼녀가 누구이고, 왜 다른 사람으로 살았어야 했는지, 그리고 그녀의 최후는 어떻게 될 것인지의 문제를 규명하는 일에 집중한다.

<화차>는 목표가 분명한 영화고, 그 목표를 향해서 우직하게 달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의 일방로를 따라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인간이 아니어야만 했던 한 여자의 삶이 전모를 드러낼 때까지, 나는 꽤 오랫동안 제대로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의 결말, 그녀를 소외시키다

<화차>의 긴장감은 문호와 경선이 만나는 용산역 에스컬레이터 신에서 최대치에 이르고, 이들의 대화를 통해 갈등이 노골적인 외형을 갖게 된 다음부터는 급격히 소강한다. 이후 극적인 추격신이 이어지지만, 이때의 긴박감도 에스컬레이터 신의 그것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에스컬레이터 신은 영화가 원작으로부터 분기하는 지점이다. 소설에서는 경선에 해당하는 인물이 그녀를 추격하던 형사 앞에 나타나는 순간 이야기가 바로 종결되기 때문이다. 원작 속 결말의 모호한 뉘앙스를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이야기를 그대로 진행시키는 선택을 했고, 이러한 정면 돌파 덕분에 나는 경선을 직접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경선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라진 뒤, 그녀의 말과 행동은 줄곧 주변 인물들의 회상이나 종근의 추리에 의해 재현되어왔다. 그녀의 과거 행적이 간접화법을 통하지 않고 직접 영화에 기입된 것은 터미널 신과 펜션 신 정도가 유일하다. 그리고 비로소 엔딩에 이르러, 그녀는 규명해야 할 대상이 아닌, 움직이는 현재적 주체로서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경선은 이렇다 할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 채 철로 위로 뛰어내리고, 곧 처참한 시체로 남는다. 경선의 처연한 죽음이 영화의 최종 도달지점이라면, 용산역 시퀀스들은 그 죽음을 이끌기 위한 마지막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이야기의 완결에 대한 <화차>의 내적 강박이 드라마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파국을 만들어낸 셈인데, 문제는 그 파국의 방식이 그동안 경선에 대해 쌓아온 정서를 훼손한다는 점에 있다. 이는 단순히 용산역 시퀀스들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시퀀스들로 인해 스토리의 기동력과 장르적 관습에 가려져 있던 영화의 성긴 지점들이 불필요하게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용산역 신에서는 세명의 추격자가 만난다. 약혼녀를 쫓는 문호, 용의자를 쫓는 종근, 그리고 행복이라는 평범한 가치를 쫓던 경선이 그들이다. 이 세 갈래의 추격은 경선의 죽음으로 인해 모두 실패로 끝이 난다. 그리고 철로에 뻗은 그녀의 시체를 통해서 세 추격동인간의 격차가 분명해진다. 시종일관 약혼녀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고자 했던 문호는 에스컬레이터 신에서도 경선의 범죄 여부와 그녀의 진심만을 확인하려 든다. 종근의 경우, 직업적인 목표 의식은 항상 경선에 대한 공감을 압도해왔고 용산역 신도 예외는 아니다. 문호와 종근이 경선에게 던졌던 마지막 질문과 권고는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에 앞서 이를 규정하려는 자기 본위적인 욕구의 발로로 보인다. 그 때문일까, 경선의 최후가 남기는 비극성에 비해 이들의 마지막 절망과 허탈감은 다소 경박하게 느껴진다. 마산의 병원 신 정도를 제외하면 경선의 과거에 대해 두 캐릭터가 깊이있는 교감을 보이는 장면은 거의 없다. 원작의 사려 깊은 형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아마도 이 지점이 아쉬움의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원작에 기대어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 영화의 흠결을 따지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영화의 엔딩이 아쉽게 느껴졌던 이유는 평면적인 캐릭터 탓이 아니다. 그보다는 캐릭터의 욕망을 영화 자체의 욕망으로 서둘러 전이시키려는 징후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영화는 경선의 몸이 철로에 떨어지기 직전, 문호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장면을 그녀의 마지막 회상으로 삽입한다. 이는 일차적으로 경선의 처절한 최후를 극적으로 가시화하는 효과를 낳는데, 그 결과 그녀의 삶의 진폭은 멜로드라마적 틀에 갇히고 만다. 나는 이 인서트가 다소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구역질나는 시체와 사투를 벌일 만큼 매 순간 끔찍한 공포와 불안을 견뎌온 경선에게, 그리고 이미 첫 결혼을 통해서 호의와 연민이 협박 앞에 3개월을 채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에게, 삶이라는 무시무시한 전투의 끝을 안타까운 러브스토리로 봉합하는 것은 일관성에 어긋날뿐더러 예의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인서트는 문호가 약혼녀에 대해 가졌던 내밀한 근심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적 실현처럼 보인다. 이야기의 완결을 향한 영화의 내적 강박이 타자를 호명하려는 캐릭터의 욕망과 슬그머니 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영화의 결말은 경선이라는 타자를 한번 더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허탈함이 아니라 무력감의 종장

경선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내가 그녀에게 기대했던 말은 “나 사람 아니야. 나 쓰레기야” 같은 자조 섞인 대답이 아니었다. 원작의 마지막 대목을 인용하자면, 나는 그녀가 “혼자서 힘겹게 등에 짊어지고 온”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기다렸던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었다”는 말보다 그저 “살고 싶었다”는 대답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고조된 긴장감 속에서 경선의 목소리를 경청하게끔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만 경선과 문호의 마지막 대화는 해프닝처럼 금세 지나가버리고 만다. 결국 경선은 자신의 목소리를 차단당한 영원한 타자로 남게 된다. 영화가 스토리의 분명한 완결을 꾀했으면서도, 원작과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멈추게 된 것은 흥미로운 결과다. 나는 소설과 영화에서 모 두, 그녀 자신만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영화는 경선이 추락하는 동안 눈물을 담은 클로즈업숏과 인서트를 삽입해 그녀의 심리를 가시화함으로써 경선의 마지막 선택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하지만 철로에 부딪힌 경선의 가냘픈 몸과 얼굴은 급격히 덧칠된 드라마적 요소로는 설명될 수 없는, 매우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여운을 남긴다. 핏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벗은 몸이나 아버지의 죽음을 기도하던 절박한 뒷모습이 그랬던 것처럼, 연민과 공포를 동반하는 깊은 피로감이 그녀의 육체를 통해서 유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 피로감의 정체는 프로이트적인 의미의 ‘언캐니’, 낯선 대상에게서 감지되는 익숙한 불안 같은 것이다. 영화 <화차>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가시화하는 방식으로 지적인 불안에 대처한다. 그러나 영화가 남기는 보다 섬뜩한 공포는 오히려 눈앞에 드러난 타자가 현시하는 익숙한 징후들일 것이다. 경선과 선영의 사연은 유사한 현실 사례들에 대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인 기만에 대해 명시적인 비판을 늘어놓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미 이들의 비극과 수많은 고리들로 얽혀 있는 광적인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화면에 드러난 경선의 시체가 주는 좌절감은 이같은 현실에 대한 내밀하고도 선험적인 공포와 닿아 있다. 그 때문에 남겨진 인물들로부터 카메라가 멀어지는 마지막 숏에서, 나는 그들의 허탈함과는 거리를 둔 채 보다 지독한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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