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핀처와 트렌트 레즈너의 인연은 핀처의 출세작인 <쎄븐>(1995)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쎄븐>의 전설적인 오프닝에 쓰인 곡이 다름 아닌 나인 인치 네일스의 <Closer>였고, 핀처는 <파이트 클럽>(1999)의 음악을 레즈너에게 맡기려 했지만 스케줄 문제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핀처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싱글 <Only>의 뮤직비디오를 감독하는 등 레즈너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페이스북 창업자의 일대기를 그린 <소셜 네트워크>의 연출을 맡게 되었을 때 레즈너에게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의뢰했다. 처음에 고사하던 레즈너는 결국 승낙했고, 2000년경부터 레즈너와 함께 작업해온 영국 출신의 뮤지션 아티커스 로스(그는 <일라이> (2010)의 사운드트랙을 작곡하기도 했다)가 여기에 합류했다. 둘은 핀처에게 곡의 초안을 보내고 수정 요구를 기다렸지만 핀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별로라고 말할 게 없어요.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소셜 네트워크>의 칼날 같은 대사와 빈틈없이 연출된 화면에 삽입된 레즈너와 로스의 일렉트로닉 음악은 어둑어둑한 서정과 날카로운 현대적 감각 둘 다를 취하는 동시에 영화 전체에 팽팽한 긴장을 불어넣었으며, 그들은 이 ‘데뷔작’으로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베스트 오리지널 스코어’ 부문을 수상했다.
핀처와의 파트너십은 올해 개봉된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011)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이 엄청나게 싸늘하고 인공적인 ‘북구 누아르’에서 레즈너와 로스의 음악은 더 불길해졌으며 더 무시무시해졌다. 다시 한번 핀처의 영화와 이들의 음악이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인다는 것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는 바꿔 말하면 이들의 음악을 핀처만큼 활용할 수 있는 감독이 과연 또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도 통한다. 현재까지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레즈너와 로스의 작업은 두편뿐이고, 그나마도 같은 감독과의 작업이다. 이들이 계속해서 사운드트랙 작업을 할지, 혹은 다른 감독과도 일하게 될지, 그도 아니면 핀처와 레즈너-로스의 조합이 새로운 세기의 앨프리드 히치콕과 버나드 허만이 될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 두편의 사운드트랙에서 연출자의 비전과 음악가의 비전이 정교하게 얽혀들며 이중나선을 그리는 드문 순간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셜 네트워크> 중에서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소셜 네트워크>에서 음악이 영상을 뒷받침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순간이 있다. 틸트 렌즈가 인상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조정 경기 장면이다. 음악은 마치 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처럼 영상과 경쟁한다.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곡을 재해석한 이 박력 넘치는 곡은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절묘한 상승효과와 번득이는 마무리가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