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안 좋은 상황에서조차 잘도 적응한다. 사랑받을 타이밍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보다 얻어맞을 타이밍을 알아챌 수 있는 쪽을 선호하게 된다. 적응이란 그런 것. 그래서 게을러진다. 혹은 두려워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사라 베이크웰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기 시작한 이유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커닝해볼까 하는 꼼수였는데 이게 웬걸. 생각했던 것과 내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단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몽테뉴와 그의 주저인 <수상록>을 다룬 책이다. <수상록>을 읽어주는 책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몽테뉴는 어떻게 살았기에 <수상록>을 썼을까”를 말한다(책을 1/3쯤 읽고 나서야 <수상록>을 읽어주는 책이 필요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데, <수상록>은 살인무기로 써도 될 정도로 두껍다는 압박이 있으나 알랭 드 보통을 비롯한 현대 에세이스트들의 고조할아버지답게 경쾌하고도 깊은, 취권고수 같은 글쓰기의 위엄을 갖춘 고전이다).
프랑스인인 몽테뉴는 가톨릭 신자가 주를 이루던 보르도와 당시 신흥교파였던 프로테스탄트를 지지했던 페리고르의 경계에서 태어났다. 지역적 특성 덕분에 몽테뉴가의 일파는 지금도 여전히 샤토 디캠이라는 전설적인 포도농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비옥한 토지와 매관매직이 가능했던 당대의 풍토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몽테뉴와 그의 가문은 사회적 신분이 높아졌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으며 몽테뉴는 그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몽테뉴 가문의 역사부터 그가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고 이후 글을 쓰며 살았는가를 상세히 기록했다. 이 책에서 ‘에세’라고 표기하는 <수상록>의 구절구절이 그의 삶 중 어떤 장면에서 비롯하는가를 알게 도와주니 <수상록>을 읽은 이에게는 귀한 복음이다. 2011년 전미비평가협회상과 아마존닷컴 올해의 책으로 꼽혔다는 광고문구가 무색하지 않게 유익하고도 재밌지만 아무래도 <수상록> 독서가 우선하지 않고는 이 책을 다 읽어도 읽었다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 하여튼, 이 책을 보면 몽테뉴의 인생은 그의 아버지의 독특한 교육철학에서부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몽테뉴를 이웃 마을의 ‘비천한’ 가정으로 보내 한두살 때까지 그곳에서 자라게 했다. 페리고르 지방의 사투리를 가장 먼저 듣고 큰 몽테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자는 말조차 정확한 라틴어 격 어미를 사용해 말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그의 아버지는 아침에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해서 깨우면 뇌를 손상시킨다는 생각에 매일 류트나 다른 악기로 애조 띤 곡조를 연주해 아들이 마법에 걸린 코브라처럼 침대에서 일어나게 했다. 사라 베이크웰은 이 신기한 아버지에 대해 잔뜩 쓰다가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아버지를 능가하기 위해서 기를 쓰면 안된다. 그러면 건강을 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