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은 온통 녹색이었다. 걸프전쟁 말이다. <CNN>을 통해 방송된 야간폭격장면은 이후 전쟁영화의 표현양식을 바꾸었다. 전쟁은 게임에 가까워졌다. 무한히. 피와 살을 전시할 수밖에 없었던 베트남 전쟁의 시각적 충격이 반전운동으로 이어졌다면 녹색 화면에서 작게 반짝이는 섬광은 마치 그게 인간의 죽음이 아닌 0과 1의 디지털 세상에 속한 듯 느끼게 만들었다. 미국 <CBS> 온라인 뉴스의 과학기술 전문기자인 피터 노왁이 쓴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는 그 녹색 화면을 다름 아닌 패리스 힐튼의 섹스비디오 유출사건과 연관짓는 데서 출발한다. 패리스 힐튼 섹스비디오에 나오는 속살은 화사한 분홍색이 아니라 온통 에메랄드빛. 야간투시기법으로 촬영된 화면이 부르는 기시감. 단순한 호기심은 파고들수록 소비재 전반에 대한 통찰로 이어져서, 비닐봉지부터 헤어스프레이, 비타민, 구글 어스까지 군에서 출발한 기술에 기반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포르노산업이야말로 전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소형 필름카메라부터 VCR에 쓰는 자기 녹음, DVD에 쓰는 레이저 그리고 인터넷까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명저 <총, 균, 쇠>가 무기, 병균, 금속이 바꾸어놓은 인류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는 21세기에 그와 같은 파급력을 지니고 번식해나가는 현대 문명의 핵심 키워드가 전쟁, 포르노, 패스트푸드라고 말한다. 노왁은 전쟁과 포르노, 패스트푸드 산업을 각각 들여다보면서 진화과정을 탐색하고자 시도하는데 이 산업들이 난교하는 모습을 중계하기보다 어떻게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는가를 각각 보여주기 때문에 <총, 균, 쇠>에 필적할 힘을 갖지는 못한다. 노왁이 이 책을 통해 끈질기게 전달하고자 애쓰는 주제라면 군과 포르노, 패스트푸드 산업이 아무리 겉으로 깨끗해 보일지라도 이 삼위일체 중 “깨끗한 산업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참고로, 이 책 5장은 김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NASA와 식품회사간의 기술 전수 사례를 예시하는데 그보다 냄새나는 경우를 찾기 힘들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