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몇몇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가, 태어나서 처음 본 콘서트가 화제에 올랐다. 그 자리에는 1970년생부터 1981년생까지의 남녀가 모여 있었는데, 처음으로 본 콘서트가 어떤 것인지로 세대와 지역을 짐작할 수 있었다. 1970년생인 친구가 처음 본 공연은 들국화였다. 한살 차이가 나는 후배는 장필순이었고, 더 어린 남자 후배 한명은 이치현과 벗님들이었고(겉늙은 거야!) 가장 나이 어린 여자 후배는 김건모였고, 나보다 두살 어리고- 어리다고 해도 올해 나이 마흔!- 서울 근교에 살던 여자 후배가 처음으로 본 콘서트도 김건모였다.
내가 맨 처음 본 게 어떤 공연이었더라 잠깐 생각하다가 “아마 롤러코스터였을걸”이라고 하자, 1970년생이자 나와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 현재는 작가로 활동 중인 친구가 곧바로 수정해주었다. “너 들국화잖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같이 보러 갔잖아.” 아, 그랬나? 그랬구나.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기억력이 형편없는 사람이 기억력 좋은 친구와 함께 있다보면 이런 수모를 자주 당하게 된다. 공연장은 대구의 실내강당 같은 곳이었던 것 같고, 주옥같은 들국화의 히트곡과 함께 ‘홀리스’와 ‘스틱스’의 노래를 들었던 것 같고, 전인권의 목소리가 참으로 찌릿찌릿했던 것 같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친구는 어찌나 기억력이 좋은지 “그때 앙코르곡으로 <제발>을 불렀어. ‘제발 그만해 둬. 나는 너의 인형은 아니잖니.’ 가사가 앙코르곡으로 딱이잖아.” 들국화는 그때 이미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를 노래로 실천하고 계시었구나.
그 많은 공연을 누가 다 보나
지방에 살면서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어지간한 거물급 뮤지션이 아니면 지방 순회 공연에 나서기가 힘들고, 지방으로 온다고 해도 큰 도 시 위주로 열리니 지방의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공연을 본다는 건 문화적인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매주 수많은 장소에서 수많은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는 거였다. 홍대 거리에 붙은 포스터를 보면서 저렇게 많은 공연을 누가 다 보러 가나, 싶었는데 막상 공연장에 가보면 늘 사람들이 많았다. 이 사람들은 다들 어떤 이유로 이 공연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그게 늘 궁금했다.
‘붕가붕가레코드’의 곰사장은 한 강연에서 음악의 세계로 뛰어들게 된 계기가 고향 제주도에서 본 공연 때문이라고 했다. 제주도까지 찾아온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의 공연을 본 중학생은 꿈을 키워 음반제작자가 되었고 ‘장기하와 얼굴들’을 비롯한 수많은 뮤지션들의 앨범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책 한권이 어떤 사람을 작가로 만들고 영화 한편이 어떤 사람을 감독이나 배우로 만들 듯, 한 시간 남짓의 공연이 수많은 사람들을 뮤지션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 세대가 들국화 공연을 보면서 꿈을 키웠듯 다음 세대는 노브레인, 크라잉넛을 보며 꿈을 키웠고, 또 다음 세대는 새로운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고등학생 때 본 들국화 공연은 요즘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장소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서울에서 열린 들국화 공연은 분위기가 달랐을까- 모두들 좌석에 앉아서 사이좋게 박수를 치던 장면을 떠올리면 건실한 종교집단의 부흥회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로 들국화의 노래를 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전인권이 아무리 “행진”이라고 외쳐도 우리는 의자에다 엉덩이를 딱 붙인 채로 박수 치며 따라부르기만 했던 것이다.
요즘 홍대 클럽의 록 공연장에 가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일단 공연이 (어지간히 비트가 빠른 음악을 하는 그룹이라면) 대부분 스탠딩인 데다가 관객의 반응도 격렬하다. 음악에 맞춰 정신줄을 놓고, 정신줄과 함께 관절의 줄도 놓으면서 미친 듯이 흔드는 걸 보면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짜릿할 정도다.
‘프레드페리 서브컬처 뷰직 세션 2012’의 2월 공연이었던 ‘텔레파시’와 ‘고고스타’의 공연을 보면서 새로운 세대의 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텔레파시의 무대도 좋았지만 (특히 새 보컬 정우진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귓속에 또렷하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고고스타였다. 고고스타의 음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디스코와 록을 섞은 다음에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기묘한 ‘뽕끼’를 한두 방울 떨어뜨린 게 고고스타의 음악이다. 디스코가 기본에 깔려 있는 그룹이어서 공연장의 분위기는 흥겹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웬걸, 이런 난장판이 없다. 몸을 부딪쳐가며 아슬아슬하게 뛰어노는 ‘슬램’은 기본이고 간단한 원을 만들고 그 안에서 뛰어노는 ‘서클 핏’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더니 관객 한명을 무대 위로 올리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거의 헤비메탈 그룹의 공연장이다. 나는 차마 그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들어갔다가는 10분 안에 뼈에 금가거나 코피 흘리면서 끌려나왔을 거다) 맨 뒤에 서서 고고스타의 무대와 슬래머들의 신나는 무대를 함께 보는 게 즐거웠다.
젊음이라는 조커
브이제잉 영상은 플레잉카드(트럼프)의 디자인을 기본으로 한 게 많았는데, 날뛰는 슬래머들의 역동적인 모습과 텀블링을 곁들이며 무대를 뛰어다니는 보컬 이태선의 모습과 플레잉카드의 그래픽은 한 세트처럼 잘 어울렸다. 그 장면은 마치 자신의 패를 믿고 전 재산을 판돈으로 밀어넣는 무모한 카드 게임 같았다. 아니면 자신의 패는 보지도 않고 올인하는 무모한 카드 게임 같았다. 그들이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젊음이라는 조커를 들고 있으니까, 이대로 모든 걸 불살라버려도 다시 땔감을 모으고 불을 지필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게 있으니까.
슬램을 하면서 공연장을 누비던 젊은이들 중 누군가는 뮤지션이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작가가 될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음반제작자가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슬램을 하다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상실감에 빠지고, 심심해서 잡은 책에 몰두하여 공부에 전념하게 되고, 에잇 이렇게 된 거 공부나 열심히 해야지 생각하고는 계속 공부하다 덜컥 고시에 패스하는 바람에 판사가 될지도 모른다(앗 이것은 ‘비대위’ 김원효식 과대망상!). 한 30년쯤 지나서 우연히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2012년 고고스타의 공연을 추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2012년의 공연을 기억할까. 자세히 기억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을 테고, 그때가 정말 좋았지 요즘 음악은 전부 이상해, 라며 세월을 한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시간의 기억
세월을 보내고 나이를 먹으며 우리가 쌓아가는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몇 시간의 기억이다. 밤을 꼴딱 새우며 책을 읽었던 시간들, 처음으로 가본 콘서트장에서 10분처럼 지나가버린 두 시간, 혼자 산책하던 새벽의 한 시간. 그 시간들, 그리고 책 속, 공연장, 산책길처럼 현실에 있지만 현실에서 살짝 어긋나 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기억하든 기억하지 못하든 그 시간과 공간이 쌓여 우리가 좀더 풍성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고스타의 <쇼윈도>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We are crazy but not rude’. 번역하자면, 아마도, ‘우리는 미쳤지만 무례하지는 않아’일 것이다. 2012년 고고스타의 공연장에서 나는 그 말을 떠올렸다. 그들은 모두 미쳐 보였지만 서로에게 무례하지 않았고, 모두 정신줄을 놓은 것 같았지만 먼 훗날 이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