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건축가도 있다. 마을에 목욕탕이 필요하다는 주민들의 말에 아예 마을회관을 목욕탕으로 만들어버린 사람. 시공 자리에 서 있던 나무를 보호하려고 그 나무를 감싼 건물을 만드는 사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와 ‘기적의 도서관’ 설계로 유명한 고 정기용 건축가다. 그는 “건축은 근사한 형태로 만드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말로써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연을 담아 건물을 지어올렸던 그는 한국 건축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말과 흙의 건축가였다. 그는 지금 세상에 없지만, <고양이를 부탁해> <태풍태양>으로 ‘공간의 영화’를 만들어왔던 정재은 감독이 그의 마지막 나날들을 동행하며 기록한 <말하는 건축가>를 만들었다. 정기용 건축가와의 만남은 장편영화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다큐멘터리에서 활력을 찾길 원했던 정재은 감독에게도 큰 전환점이 됐다.
-3월11일이 정기용 건축가 사망 1주기다. <말하는 건축가> 개봉 시기를 맞춘 건가. =맞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맞아떨어져서 다행이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상영 당시 배급 관계자 분에게 선생님 1주기에 맞춰서 개봉하고 싶다고 말했다. 극장이 한개가 되든 두개가 되든 그때 맞춰서 개봉은 해주겠다는 대답을 받았는데, 정말로 그렇게 됐다. 3월11일엔 모란공원에 묻히신 선생님을 뵈러 간다. 제자들과 같이 놀고 오려 한다.
-<태풍태양>(2005) 이후 공백이 길었다.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잘 안됐다. 몇년 동안 골방에 처박혀 시나리오만 쓰고 있자니 너무 답답한 거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벗어나 당장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건축다큐멘터리 보는 걸 좋아했고, 건축물에도 관심이 있어 자연스럽게 건축다큐멘터리를 구상하게 됐다.
-영화를 찍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며 어떤 생각을 했나. =사실 투자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내 시나리오엔 분명 새로운 게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투자가 안될까. 어쩌면 낯설고 새로운 내용이 담겨 있어 그런 건 아닐까 고민했다. 이런 생각도 들더라. <고양이를 부탁해> <태풍태양>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이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아니었다. 어쩌면 제작자, 투자자들에게 난 (흥행적으로) 검증이 안된 감독일 거다. 그리고 영화 제작환경 자체가 대규모의 프로젝트와 극단적으로 작은 프로젝트만이 공존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이런 변화 안에서 작품을 안 할 수는 없으니 고육지책으로 <말하는 건축가>를 시작했지만, 이런 소규모 영화를 통해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건축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나. =어렸을 때부터. 어딘가를 가면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곳,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건물부터 둘러보곤 했다.
-생각해보면 <고양이를 부탁해> <태풍태양>도 도시 공간을 사려 깊게 조명한 영화였다. 공간에 대한 고민에 있어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차이가 있던가. =예전엔 내가 원하는 모든 걸 프레임 안에 가득 채우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굉장히 아름다운 걸 담아내려는 의욕이 강했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공간을 바라보는 눈이 좀더 여유로워진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더라. (웃음)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하면서 보다 큰 관점에서 공간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다 다음 작품은 막가파 영화 나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웃음) 너무 오픈 마인드가 돼서.
-그럴 리가. (웃음) 정기용 건축가는 어떻게 알게 됐나. =<말하는 건축가>에 출연하는 이종건 건축비평가가 추천해줬다. 선생님이 한국 건축계에서 정말 특별한, 이상한 존재라고 하더라. 선생님이 사람들을 위한 공공건축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멋진 건물 짓는’ 건축가가 아니라 건축가의 실체를 보다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추천 사유였다. 다른 이유로는 정기용 선생님이 6년 전 대장암 수술을 하셨고, 죽음에 인접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남길 거라는 점이 있었다.
-첫인상이 어땠나. =2009년 12월에 선생님을 처음 뵀는데, 건축다큐멘터리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주인공은 없을 것 같더라. 시나리오를 쓸 때 감독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주인공이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는 거잖나. 정기용 선생님은 뚜렷한 신념이 있었고 그걸 평생 실천해온 사람이라 더할 나위 없이 영화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천진난만하면서도 지적이고, 한편으론 굉장히 감성적인 분이셨다.
-건축가로서 느낀 매력이 있다면. =이분이 추구하는 건축에 굉장히 색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건축이라고 하면 공간, 빌딩을 떠올렸는데 선생님은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 선생님이 설계한 무주의 등나무운동장만 해도 관객석이 고스란히 햇빛에 노출되는 걸 염려해 지붕을 올리고, 주변의 등나무와 어우러지는 친환경적인 건물로 완성됐잖나. 이런 과정을 보며 영화의 중심이 건물에서 사람으로 옮겨가게 됐다. 위대한 어떤 공간이 아니라 한명의 창작자로서 건축가를 바라보는 데에 집중한 거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흔히 겪는,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긴장감은 없었나. =가장 적응이 힘들었던 건 선생님의 ‘말’이었다. 간단한 질문을 하나 던지면 그 질문 하나에 대해 평균 한 시간을 말씀하셨다. 사소한 대화는 대화라고 생각을 안 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극영화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인물의 대사보다는 행동,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시니 너무 힘든 거다. 그러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할 말이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사람에게 말이란 건 모든 행동과 실천과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마치 선생님이 영화를 찍는 우리에게 자신의 삶과 건축에 대해 유언을 남기는 것 같았다. 그 순간부터 선생님의 말을 영화에 담는 것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았다.
-편집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큰 흐름을 어떻게 잡았나. =극영화를 만들 때 사람들로부터 “네 영화는 다큐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배경과 이야기를 선호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은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정작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게 되니 영화적인 드라마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더라. 도발적인 사건이 있고, 갈등구조 안의 주인공을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 있었으면 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시나리오의 관습적인 투르기에 의지한 거다.
-일민미술관 전시회를 앞두고 정기용 건축가와 강성원 큐레이터가 벌이는 설전이 딱 그런 장면인데. =그 장면을 찍고 드디어 우리 영화에 악역 담당해주실 분이 나타났구나, 하고 좋아했다. (웃음) 그전엔 정기용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다들 가만히 듣고 있는 분위기였는데, 강성원 큐레이터는 “됐거든요” 하면서 말 자르고. 찍는 사람이야 완전 신났지. (웃음) 하지만 관객이 저 사람 세다, 나쁘다고 보진 말았으면 한다. 정기용 선생님을 너무 잘 알고 친하기 때문에, 예술가를 통제하고 전시의 영역 안에서 큐레이팅하는 데 익숙한 분이라 그랬던 거니까.
-정기용 건축가의 ‘말’을 들려주기도 하지만 텍스트로 보여주기도 한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문구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선생님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아져서 자막을 넣을까, 아니면 제3자의 내레이션을 넣을까 여러모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일민미술관 전시회를 갔는데 관객이 선생님의 책에서 캡처한 텍스트를 가장 좋아하더라. 저서의 문장들이 워낙 좋기도 했다. 그래서 몇몇 텍스트를 촬영했고 그걸 입체적인 CG로 만들었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도 서로에게 보내는 문자를 화면에 덧입힌 적이 있는데, 나는 말과 텍스트와 언어에 꾸준히 관심이 가는 듯하다.
-무주 등나무운동장, 기적의 도서관, 개인주택 등 정 건축가가 작업한 수많은 건축물이 영화에 등장한다. 건축가와 동행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나. =개인적으로 큰 전환이 된 것 같다. 내가 골방 소녀 스타일이다. 사람도 잘 안 만나고 방에 갇혀 시나리오 쓰거나 책 읽는 것이 이전의 내 삶이었다면, 정기용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세상과,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자극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선생님처럼, 어떤 관객이 이 영화를 볼 것인가에 대해 나도 질문해보는 계기가 됐다.
-마음속에 담아둔 건물이 있을까. =영화에는 안 나오는데, 무주에 선생님이 만드신 작은 납골당이 있다. 무주가 인삼밭으로 유명한데 거기서 모티브를 따온 작고 따뜻하고 햇빛 잘 들고, 조용한 곳이다. 언젠가 그곳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
-이 영화의 가장 극적인 대목은 정기용 건축가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죽음을 예감했나. =2010년 여름, 내가 보기에도 선생님이 굉장히 힘들어 보이는 날이 있었다. 지금쯤 촬영을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 내가 어떻게 되면 네가 일을 하는 데 지장이 있지 않냐고 하시더라. 하지만 나는 이미 선생님의 병환조차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냉정하게 말씀드렸다. 죽음조차 선생님 삶의 일부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선생님은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됐다”고 하셨다. 물론 나도 슬펐지만,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선생님이 보여주시고 남겨주고 싶은 모습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언이라 할 만한 얘기가 있었을까. =운전 거칠게 하지 말라고. 그게 나에게 개인적으로 관심을 보이신 유일한 잔소리였다. (웃음) 그래서 운전 거칠게 안 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건축가의 삶에 집중하다 보니 본격적으로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다. =나도 그런 섭섭함이 있었다. 좀더 본격적인 건축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3, 4년 내로 <말하는 건축가>를 3부작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나 나름대로도 삶과 예술에 대해 열린, 새로운 관점들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기획하게 됐다. 벌써 2편의 촬영에 들어갔다. 2편은 서울의 빌딩, 3편에선 해외 스타 건축가들의 한국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세편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영화가 될 거다.
-극영화는 안 만드는 건가. =지금 시나리오를 써서 오주현 PD(<고양이를 부탁해> 제작부장)에게 넘겨놨다. 역시 공간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한국 궁궐엔 지하 공간이 없다. 그런데 그런 공간이 존재했다는 가정하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호러판타지물이다. 제작비가 꽤 많이 들 것 같아 두고보려 한다. 다큐멘터리를 하다보니 현실에서 접할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한 영화적 욕구가 자꾸만 확장되는 것 같다. <말하는 건축가>가 잘돼서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