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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교회의 문을 열면 신비로운 세상이 열린다
황두진(건축가) 2012-03-15

잉마르 베리만의 고향 스웨덴 웁살라에서 <제7의 봉인>을 떠올리며

웁살라 대성당.

스웨덴에 또 다녀왔다. 회사 일과 관련된 출장이었지만 잉마르 베리만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갈 기회이기도 했다.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 입국장에 붙어 있는 베리만의 사진은 이제 익숙하게 느껴진다. 스웨덴을 알린 여러 사람들의 사진 중에서도 그의 사진이 가장 크고, 또 가장 마지막에 붙어 있다.

스톡홀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그의 고향인 웁살라를 찾았다. 대학 도시이자 생물학자 린네가 활동했던 것으로 유명한 이 역사 도시에서 베리만은 루터교 교구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고 그가 살았던 집도 있으며 심지어 어린 시절 그가 들락거렸다는 영화관도 그대로 남아 있다. 북구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벽돌로 지어진 웁살라 대성당도 바로 지척이다. 그의 자서전인 <마법의 등>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교회라는 신비한 세계에 빠져들었다. 낮은 아치, 두꺼운 벽, 영원의 냄새, 그리고 벽과 천장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세의 그림과 조각들 위를 떨리듯 비추는, 색이 물든 빛….”

중세와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이 가장 첨예하게 담긴 작품은 아마도 <제7의 봉인>일 것이다.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중세의 기사가 수도승의 모습을 한 죽음과 일종의 흥정을 벌인다는 구도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연상케 한다. 해변을 배경으로 이 둘이 체스를 두는 장면은 지금까지 본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의 하나다. 이 또한 베리만이 중세의 그림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고 알고 있다. 언덕 위에서 실루엣으로 보이는 ‘죽음의 댄스’ 장면도 인상적이다. 현대의 비극을 중세라는 상황에 빗대어 그린 <제7의 봉인>은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이기도 하다.

절대자, 그리고 구원이라는 주제는 서구인들에게 일종의 집착인 듯하다. 상대적으로 동양권에서 이 주제가 그리 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은 윤회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인가? 별개의 장르지만 <매트릭스>의 주제도 결국 그것이다. 돌아올 수 있는 길과 돌아올 수 없는 길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두 길 모두 상상하기 어렵다. 웁살라 대성당의 썰렁한 실내가 유난히 공허하게 느껴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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