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무엇일까. 도리스 되리의 신작은 시작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한 순간에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를 때가 많다”는 독백과 함께 푸른 하늘, 흰 구름, 넓은 양귀비 꽃밭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전작 <파니 핑크> <내 남자의 유통기간> <체리 블로섬-하나미> <헤어드레서>에서 볼 수 있듯이, 되리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녀는 독일어로 행복을 뜻하는 <글뤽>(Gluck)이라는 영화로 행복의 본질에 천착한다.
영화는 주인공의 불행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주인공 이리나(알바 로르바처)는 동유럽 어느 시골에서 부모와 함께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누린다. 농가에서 양을 치고 꿀을 병에 담는 일상이 동화처럼 그려진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을로 탱크가 쳐들어오고 부모는 군인에게 살해당하며 이리나는 강간당한다. 결국 이리나는 혼자 베를린으로 도망가 거리의 매춘부로 연명하고, 정신적 고통을 못 이겨 압정으로 허벅지를 찌르기까지 한다. 그러다 이리나는 길거리 노숙 펑크족 칼레(빈센츠 키퍼)와 사랑에 빠지면서 점점 위로받고 새로운 행복을 찾는다.
영화는 스토리보다 우리가 놓치고 사는 ‘찰나의 소중함’에 집중한다. 외롭고 지친 영혼도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 얼마든지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함께 지내는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집도 없이 살던 이들은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칼레는 신문 돌리는 일에 도전한다. 영화는 연인들이 일상에서 싸웠다 화해하고 행복을 일구는 과정에 두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할애한다. 하지만 이리나의 손님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영화는 위기와 파국으로 접어든다. 페르디난트 폰 쉬라흐의 베스트셀러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범죄소설을 바탕으로 한 <글뤽>은 올해 베를린영화제 스페셜에서 선보인 뒤 2월 말에 개봉했다.
<글뤽>은 물론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리스 되리의 영화다. 하지만 전작들과 달리 <글뤽>은 코미디적 요소가 전무하고 오로지 센티멘털한 분위기로만 흘러간다. 채식주의자에다가 원래 피를 보지 못했던 칼레가 시체를 전기 빵칼로 자르는 고어에 가까운 끔찍한 장면은 영화의 전체 분위기나 구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삐걱거린다.
영화 속 사운드트랙인 피아노 음악은 이들의 행복한 순간들을 그려내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영화를 지나치게 키치적인 분위기로 빠트리는는 위험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리나를 연기한 이탈리아 스타 알바 로르바처의 연기는 일품이다. 금발 가발을 하고 짙은 화장을 한 이리나의 모습은 여느 매춘부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화장을 지우고 평범한 옷을 입고 일상으로 돌아온 청순한 그녀의 변신은 마술 같다.
“촬영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도리스 되리 감독 인터뷰
-베스트셀러 범죄소설 원작을 선택한 이유는. =원작은 칼레의 시체 절단 범죄 사건을 다룬다. 하지만 이리나와 칼레의 사랑 이야기는 별로 없다. 나는 소설을 사랑 이야기로 재해석했다. 원작에 상상력을 동원해 둘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새로 썼다.-전작들과 달리 잔인한 장면들이 조금 있다. =주인공 이리나가 어디서 오고, 얼마나 가혹한 운명에 고통받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처음의 폭력 장면은 불가피했다. 그리고 칼레가 자신이 상상 못할 엄청난 일을 감행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은 개인적으로 어디서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가. =행복감을 느끼려면 오랫동안 글을 써야 한다. 경험에 의하면 그냥 글을 계속 써야 한다. 시나리오나 책 속의 인물들이 제대로 자리잡아 이야기가 잘 풀릴 때가 행복한 순간이다. 촬영할 때 배우들과 함께 캐릭터에 맞는 톤을 찾으면 하늘이 열리고 환한 빛이 내려오는 것 같은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기 위해 항상 자신을 열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