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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넉넉한 울림을 남긴다 <핑크>
송경원 2012-03-14

영화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전수일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 <핑크>는 어쩌면 진부하리만치 당연한 명제, 보는 것으로써의 영화가 무엇인지를 증명하고자 하는 영화다. 사각의 프레임 안에 말 그대로 감정을 ‘그리고 있는’ 이 영화의 장면 장면은 심혈을 기울인 정물화처럼 공간의 정서로 가득 차 있다.

부둣가 구석에 자리한 선술집 ‘핑크’에는 수많은 인간 군상의 찌든 삶이 묻어 있다. 어느 날 ‘핑크’를 찾아온 수진(이승연)은 주인인 옥련(서갑숙)과 같이 일하기로 한다.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 상국(박현우)과 함께 10년 넘게 ‘핑크’에서 장사를 해온 옥련은 동네 철거에 항의하며 주민들의 반대운동을 뒷바라지한다. 경찰 간부이자 옥련의 기둥서방인 경수(이원종)가 만류해보지만 ‘핑크’를 포기할 수 없는 옥련은 반대시위에 동참했다가 유치장에 갇히기도 한다. 종종 가게에 들러 노래를 부르는 방랑객(강산에)처럼 ‘핑크’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그렇게 각자 가슴에 상처와 애환을 하나씩 짊어지고 찾아와 잠시 쉬어간다.

화면은 정적이고, 호흡은 느리며, 감정의 폭은 완만하다. 이같은 서사적 빈틈을 메우는 것은 인간 군상의 구슬픈 사연들이다. 정지된 카메라는 인물의 표정이나 움직임 혹은 미장센과 색감을 통해 직접적으로 그려지는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모든 상황을 관조한다. 인물들간의 얽히고설킨 사연들이 촘촘히 덧칠되고 포개지는 사이 공간 혹은 미장센 그 자체는 메시지가 된다. 말하자면 인물은 공간이 되고, 공간은 이야기가 된다. 아쉽고 모자란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응시해야만 하는 수고를 거치고 나면 제법 넉넉한 울림을 남긴다. 특히 강산에가 부르는 넋두리 같은 노래의 은은함은 모자람을 메우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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