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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겨드랑이털에 관한 단상
문석 2012-03-12

과연 문제의 장면이었다. <러브픽션>의 겨드랑이털 장면 말이다. 숱하게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영화 속 하정우만큼이나 나름의 충격을 받았다. 아직까지도 그 털들의 날렵한 모양새가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는 걸 보면 그 강도는 작지 않았던 것 같다. <색, 계>에서 탕웨이의 겨드랑이털 장면은 다른 적나라한 노출에 묻혀 별 느낌이 없었지만 <러브픽션> 속 공효진의 겨드랑이털은 예상치 못한 맥락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당황했던 것 같다. 자극적이지만 에로틱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생경한 느낌의 이 장면을 보면서 전계수 감독의 도발을 느꼈다. 남녀의 사랑을 신비화, 낭만화하기는커녕 벌거벗겨 그 속내를 드러내는(하지만 귀엽게)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은 예리한 비수처럼 보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털은 인간의 골칫거리였다. 제모(除毛) 문화는 고대 이집트와 로마시대부터 나타났는데,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한 계급은 의심할 바 없이 부지런하고 다른 계급은 정말 게으르다. 전자는 다리털을 제거하는 데 반해 후자는 겨드랑이털까지 내버려둔다”고 말했다. 학자들은 이에 관해 당대 사람들의 이상 속에 그려진 신의 모습은 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건 남성과 여성의 기준이 다소 다르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여신상부터 중세시대의 ‘누드화’에 이르기까지 미술작품 속 여성들의 몸은 털 한 오라기 없이 미끈하지만 남성의 경우 치모를 비롯한 일부 털이 그려져 있다. 겨드랑이털이 다시 수면 위에 오른 건 20세기였다. 당시 의상이 점점 짧아지면서 겨드랑이털이 드러나게 되자 ‘미용’ 차원에서 제모를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특히 질레트가 안전면도기 광고에서 “겨드랑이에 털이 있는 여성은 여성답지 않다”고 카피를 적었던 것은 도화선이 됐다고 한다.

머리털이 날이 갈수록 줄어가는 입장에서 제모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무모(無謀)한 상상이지만 모든 이가 절대 무모(無毛)를 높은 가치로 받아들인다면 털의 유무와 다소로 차별받던 나같은 이들은 환호할 것이다. 하지만 그 좋은 털을 왜 굳이 밀고 뽑으려 하는지, ‘없는 자’의 눈으로는 기이해 보인다. 아마 그건 ‘수치심’이라는 단어와도 ‘문명화’라는 단어와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나뭇잎으로 몸을 가렸던 것처럼. 세상의 흐름이 그러하다 보니 이에 역행하는 건 도발로 보인다. 귀스타브 쿠르베가 수북한 치모와 음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세상의 시작>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 19세기 사람들의 충격은 대단했으리라. 쿠르베의 도발은 누드화를 통해 성적 만족을 취하면서도 털 한올 없는 미끈한 모양새 아래 그 욕망을 숨기려 한 당대의 (남성) 권력을 향한 것이었다. 어쩌면 <러브픽션>의 도발적인 겨드랑이털 장면도 언젠가 지금과 다른 평가를 받을지 모른다. 특히 한 교수가 블로그에 올린 성기 사진과 음부 그림을 음란물로 규정하는 이 나라에서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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