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랜드>는 <NYPD 블루>를 쓴 앤 비더먼과 <ER>의 제작자인 존 웰스가 함께 만든 경찰수사물이다. <CSI: 과학수사대> <로 앤 오더> 등의 성공한 레퍼토리 수사물들이 매회 새로운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이끄는 것과 달리 <사우스랜드>는 ‘LAPD의 하루’라는 부제가 어울릴 법한 일상적인 경찰 업무를, 다큐멘터리라고 착각할 정도로 거리를 두고 스케치한다. 과거의 사건이 덜미를 잡거나, 인생 최대의 적수가 불시에 찾아와 심각해지는 일도 없다. 매일 어떤 위험에 부닥칠지 모르는 그들이 무사히 하루를 살아내면 다음날도 어김없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사우스랜드>는 영문 타이틀 <SouthLAnd>가 암시하듯, LA(로스앤젤레스)가 이야기의 공간이다. 하지만 흔히 떠올릴 법한 환한 서쪽의 도시가 아니라, 무심한 일광과 그 볕에 빛이 바랜 도시가 <사우스랜드>의 LA다. 스크린 타임의 대부분은 순찰차 안의 경찰들을 보여주거나, 상황과 대치하는 팽팽한 긴장을 그려내는 데 할애되니, 야자수와 해변이 화면에 담길 여유는 없다. 흔히 TV프로그램의 수위를 말할 때 우리는 폭력이나 선정성을 논하지만 <사우스랜드>의 수위는 진정성에서 논의될 만하다. 이토록 TV라는 무대와 협상하지 않는 경찰드라마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우스랜드>는, 2009년 <NBC>에서 시즌1이 방영된 뒤 제작이 취소될 뻔한 위기를 겪었다. “방영시간대에 어울리지 않는 어두운 분위기”를 이유로, <NBC>는 시즌2를 제작해놓고도 방영 직전에 편성을 취소했다. 한번이라도 <사우스랜드>를 본 적이 있다면 공중파보다는 <HBO>나 <FX> 같은 케이블 채널이 더 어울리는 내용이라는 데 공감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TNT>는 <NBC>의 방영권을 사들였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사우스랜드>는 시즌4를 방영 중이다. 첫 시즌 파일럿에서 생애 첫 순찰을 나섰던 루키 벤 셔먼(벤자민 매켄지)은 그동안 한 계급 승진했고, 그의 트레이닝 파트너였던 존 쿠퍼(마이클 커들러츠) 경사는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중독으로 시즌3에 재활원에 입소했다가 시즌4 시작과 함께 복귀했다. 다른 드라마들처럼 스타 캐스팅은 없었지만 어느덧 조화로운 앙상블을 자랑하는 드라마로 자리잡았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기존의 메인 캐스팅에 새로운 얼굴이 더해졌다. 재활원에서 복귀한 쿠퍼 경사의 파트너로 합류한 제시카 탱(루시 리우)이다. 탱은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경찰서에서 ‘조이 럭’, ‘할리우드’, ‘푸티 탱’ 등 그가 여자이며 아시아계라는 약점을 조롱하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 별명의 기원은 밤 순찰 중 비협조적인 거구의 남자를 제압하지 못한 탱이 구타당한 사건의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 퍼져나갔기 때문인데, 소문이 있는 여자 뒤에는 섹스와 연결된 에피소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루시 리우의 제시카 탱은 보이는 것과 달리 감추어진 짐을 가졌다는 공통점으로, <사우스랜드>의 다른 캐릭터들과의 연결점을 가지며 무사히 자리잡았다. <사우스랜드>의 인물들은, 여느 경찰드라마에나 한명씩 꼭 있는 스테레오 타입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감추어야 하는 욕망이나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가짐으로써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으로 다가온다. 사실 첫회를 다 볼 때까지 나는, 탱이 루시 리우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는 LA의 구색을 맞추려고 캐스팅된 아시아계 여배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예쁘장한 중국 인형 같은 이미지로 주로 등장하던 이전 역할들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 때문인지, 아니면 거칠고 생생한 <사우스랜드>의 스타일 때문이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LA의 민낯을 드러내는 이 드라마의 묘력이, 우리가 모르던 루시 리우를 끌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