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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일본은 없다

3·11 이후 1년, 참혹한 풍경 담아내는 일본 다큐멘터리들

<무상소묘>

3·11 대지진 이후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일본은 ‘자숙’의 분위기 속에 재건에 모든 역량을 투입하였다. 하지만 3·11 대지진이 남긴 후유증과 트라우마는 아직도 사회 전반에 깊게 드리워져 있으며,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 영화계는 지난 1년간 영화산업의 위축을 겪었고, 3·11 대지진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지난해 3·11 대지진 직후 일본 영화계는 쓰나미와 지진과 관련된 영화의 개봉을 연기했고(펑샤오강의 <대지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히어애프터> 등), 많은 프로젝트의 제작이 연기되었다(야마다 요지의 <도쿄가족>, 이누도 잇신과 히구치 신지의 <노보의 성> 등). 일본영화는 지난 수년간 활황세가 지속됐었다. 2005년부터 자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급격하게 높아지기 시작했고, 개봉편수도 외화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3·11 대지진 이후 상황은 갑자기 달라졌다. 일본영화제작자연맹이 1월26일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일본 영화시장의 흥행수입은 1811억9700만엔으로 전년대비 82.1%, 관객 수는 1억4472만2600명으로 83%에 그쳤다. 스크린 수는 3339개로 2010년에 비해 73개가 감소했다. 스크린 수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18년 만의 일이다. 개봉편수는 799편으로 2010년의 716편에 비해 오히려 늘었는데, 이는 일본 영화계가 실의에 빠진 자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무료 영화상영을 대폭 늘렸기 때문이다. 일본감독협회와 일본영화촬영감독협회 등 영화 관련 단체들은 배급사의 도움을 받아 이재민 수용소 등에서 무료 상영을 하는가 하면, 사이타마현의 홈시어터 회사인 Budscene을 시작으로 많은 NGO 단체들이 ‘무지개 시네마 운동’을 시작하였다.

영화제작 현장을 보면 주류영화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독립영화의 경우 2008년의 리먼 쇼크 이후 제작비 조달이 어려워졌고, 평균제작비가 8천만엔 이하로 떨어졌다. 하지만 3·11 이후 독립영화의 제작비 조달은 더 어려워져서 현재는 4천만엔을 넘어가면 제작 자체가 어렵다. 평균제작비는 2천만엔으로 추산된다. 그래서 많은 독립영화 제작자, 감독들이 이제는 “저예산에서 무예산” 시대가 되었다고 자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3·11에 관해 가장 먼저 대응한 것은 독립영화 진영이었다. 히로키 류이치의 <강>, 마쓰에 데쓰야키의 <도쿄 드리프터>, 그리고 소노 시온의 <두더지> 등이 3·11에 관해 혹은 그 후유증에 관해 이야기한 작품들이다. 다큐멘터리는 좀더 적극적이었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포럼은 3·11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세편이나 초청하였다. 후지와라 도시후미의 <무인지대>와 이와이 순지의 <Friends After 3/11>, 후나하시 아쓰시의 <핵 국가>. 이 밖에도 오미야 고이치의 <무상소묘>, 가와세 나오미가 주도하여 세계의 여러 저명 감독들이 참여한 단편 모음집 <3·11 Sense of Home> 등이 만들어졌다.

이들 다큐멘터리는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비견할 만하다. 70여년 전 원폭의 엄청난 충격을 카메라에 담았던 영화인들은 먼발치서 카메라를 고정한 채 팬으로만 원폭의 참상을 담아냈던 데 반해, 3·11 관련 다큐멘터리는 자동차를 타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무인지대>에서 후지와라 도시후미는 지금의 일본이 더이상 이전의 일본이 아니라고 말한다. 카메라는 인적이 사라진 들판을 따라가며 “이곳은 곧 폐쇄될 것이며, 언제 다시 이곳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내레이션이 흐른다(지난 1월 말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접피해지역의 1/3에 달하는 92km² 지역에 대한 방사능 제거작업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말 그대로 ‘무인지대’가 되는 것이다). 일본사회에 깊게 드리운 3·11의 그림자를 일본 영화인들은 그렇게 처절한 심정으로 기록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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