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슨은 고유명사였지만 일반명사화되었다. 미스터리 소설에서 왓슨 역할이라고 하면 비중있는 조연이라는 뜻도 되고,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주인공인 남자 탐정과 공수관계를 형성하며 유사 연애를 지속하는 캐릭터라는 뜻도 되고, 탐정의 천재성을 기록하는 화자라는 뜻도 된다. 하지만 스릴러/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에게는 왓슨이 필요없다. 주인공의 파트너는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데 그 파트너가 죽는 일도 있으며 대개의 경우 그는 ‘고독한 이리’다. 그는 불행한 과거사(특히 부모에 얽힌)로 번민하고, 헤어진 여자를 못 잊고, 술을 고래처럼 마신다. 그의 능력은 인정받기보다는 질시와 모함의 대상이 되며 묘하게 섹시한 구석이 있어 멀쩡한 여자들이 기꺼이 그의 품에 안긴다. 노르웨이의 소설가이자 뮤지션이자 저널리스트이며 경제학자이기도 한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도 그런 ‘고독한 이리’과다. <스노우맨>은 9권까지 나온 이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인데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을 영화 <셔터 아일랜드>로 만든 마틴 스코시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콤비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영화화할 예정이다.
아내이자 엄마로 아무 문제없이 살던 여자가 실종된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는 집 식구들 중 누구도 만든 적 없는 눈사람이 집을 쳐다보는 방향으로 서 있는 게 목격된다. 눈사람은 누가 만들었을까, 왜 아이가 있는 여자들만 사라질까. 노르웨이에서 유일하게 FBI의 연쇄살인범 프로파일링 기법을 배운 해리는 연쇄살인에 무게를 두지만 동료들은 그의 분석을 비웃는다. 물론 그는 틀리지 않았고 연쇄실종, 연쇄살인, 범인의 검거와 반전으로 이어진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 최후에는 대반전. 이 계열의 소설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전개와 반전을 예측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난이도지만 밤잠 대신 책을 선택할 정도의 재미는 있었다.
요 네스뵈의 장기는 시니컬한 유머감각이다. 고독한 형사 캐릭터는 이제 드물지 않지만 요 네스뵈의 해리처럼 때때로 웃게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다. <스노우맨>에서는 여러 사람의 눈으로 해리를 묘사하는데, 엄마를 잃은 아이는 그를 못생겼지만 착한 눈을 가졌다고 하고 포주는 그를 거리를 배회하는 마약중독자 같다고 하고 아내가 실종된 남자는 그의 목소리를 잔디 깎는 기계 같다고 말한다. 해리는 시체를 발견한 순간의 충격으로 공황상태에 빠진 후배를 이렇게 위로한다. “(나는)정신줄을 놓는 훈련만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자제력을 잃는 일에 있어서라면 난 검은 띠라고.” 그의 속마음은 이렇게 설명된다. “셔츠 왼쪽에는 폴로 선수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해리는 저게 무슨 브랜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왠지 따분한 사람들이 주로 입는 옷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봄이 귓불을 간질이는 3월이라는 사실이 애석할 정도로 차가운 계절에 어울리는 장면이 많고, 그 계절에 어울리는 음침하게 섹시한 남자가 주인공이다. 시리즈의 다른 책도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