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감독이 그렇듯, 이현하 감독도 영화와의 질긴 인연을 실감하는 사람이다. ‘도망’까지 치며 영화계를 뜨려 했으나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으니. 대학 시절, 연극과 미술에 관심을 둔 불문학도였던 그가 1990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며 전공을 미학으로 선택한 게 발단이었다. 흔히 소르본이라고 불리는 파리4대학에 도착해보니 영화미학이 하나의 줄기를 형성하고 있었고, 그 역시 관심을 갖게 됐다. 강의를 듣거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화를 보는 건 필수적이었다. “시네마테크에 죽치고 앉아 하루에 3편씩 볼 정도로 정말 많이 봤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직접 만들고픈 욕심이 생기더라.” 구로사와 아키라에 관한 석사논문을 쓴 뒤, 실험영화를 전공 삼아 박사 코스를 마치니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더했다. 결국 그는 프랑스영화자유학교(CLCF)에 들어가 실기를 익힌다.
95년 귀국했을 때, 그는 영화와의 기이한 인연을 느끼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사였던 이창동 감독이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고, 대학교 연극동아리 1년 선배 박흥식 감독은 이창동 감독과 함께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연출부로 활동한 바 있었다. 인연에 이끌린 그는 박 감독의 소개로 이 감독의 <초록물고기> 연출부에 막내로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충무로 현장은 프랑스에서 배운 것과 너무 달랐다. 육체적인 고통을 강요하고 주먹구구식 해결법이 판치는 충무로를 ‘탈출’한 그는 광고계로 향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익혔던 미술 실력을 발휘해 아트디렉터로 활약했다.
IMF사태가 없었다면 그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997년 독립을 해 자신의 업체를 차렸건만, 몇달 되지 않아 종잇값을 대기도 힘든 상황이 찾아왔다. 다음해 초 사업을 깨끗이 접은 그는 영화계 언저리로 돌아온다. 영상원, 연세대 등에서 실험영화, 세계영화사 등을 강의하기도 했고, 월간지에 평론도 기고했다. 인연은 그의 몸까지 자극했다. 어느날부턴가 자신의 몸이 현장을 원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시나리오를 썼고, 마침내 <데우스 마키나>까지 오게 됐다.
“일본만화 <총몽>,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아키라> 등을 적극 차용한” 이 작품을 통해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정보독재가 우려되는 상황 속에서 인간의 감정이 어느 정도까지 억제되고 말살될 수 있나” 하는 메시지만이 아니다. 형식을 극단화하는 실험영화 전공자답게 형식미를 살리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절제된 역동성’은 그가 이 영화에서 추구하는 형식미학이다. “<와호장룡> <매트릭스> 등과는 달리 원심력과 중력이 느껴지며, 움직임과 기하성을 조화시키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상업영화이므로 어느 정도 한계는 있겠지만, 최소한 형식적 일관성을 보여줄 생각이다.” 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어떤 영화?
제작사 뮈토스필름·튜브픽처스 출연 미정 3월말 촬영 예정
시큐라 시스템이라는 경비업체와 합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씨티맵이라는 회사의 빌딩에 테러범이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빌딩 직원들을 인질로 잡은 이들은 전산실을 점거하고 특정 데이터를 빼내려 한다.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잘 훈련된 특수부대원들이 출동하지만, 전멸되다시피 한다. 테러범들이 목적을 달성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로터스’라는 정체불명의 부대원들이 나타나 눈깜짝할 사이에 테러범들을 진압한다. 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본 인질들까지 무참히 살해한다. 하지만 작전을 끝낸 로터스 대원 2명이 타고 있던 헬기가 로켓포를 맞고 추락하고, 오토바이 폭주족인 도영이 추락한 헬기에서 살아남은 소녀 주니를 발견한다. 한편 국회에서는 국가의 치안을 민간업체에 넘기려는 논의가 진행되고,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경비시스템을 갖춘 시큐라 시스템이 가장 유력한 업체로 떠오른다.▶ 2002 신인감독 14인 출사표
▶ [2002 신인감독 14인] 의 김현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아유레디?>의 윤상호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데우스 마키나>의 이현하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해적, 디스코왕 되다>의 김동원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귀여워>의 김수현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명랑만화와 권법소년>(가제)의 조근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정글쥬스>의 조민호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일단 뛰어!>의 조의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서프라이즈> 김진성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오버 더 레인보우>의 안진우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연애소설>의 이한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로드무비>의 김인식 감독
▶ [2002 신인감독 14인] 의 이종혁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