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은 무엇이든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승부욕. 19세기 후반 혜성같이 나타나 기막힌 SF소설들을 쓴 H. G. 웰스를 이기겠다는 결의. 한 사내가 웰스에게 자신의 소설을 들고 가서 평을 청한다. 웰스의 <타임머신>을 오마주한 소설로 2000년, 로봇이 사람보다 더 막강한 종족이 되어 사람과 로봇이 서로 싸운다는 설정. SF 장르엔 흔한 얘기로 잘만 썼으면 대박일 텐데 안타깝게도 사내의 소설은 조잡하고 웰스는 퇴짜를 놓는다. 그러자 상처받은 남자는 소설로는 졌어도 현실에선 이긴다고 큰소리친다. 방법은 자본주의. 남자는 런던에서 시간여행을 시켜준다며 사업을 시작한다. 탐험가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시간의 틈새를 발견했다, 크로노틸루스라는 시간열차를 타고 가면 된다 어쩐다. 사실은 조잡한 세트장을 하나 만들어놓고 미리 고용한 뜨내기들을 분장시켜 대충 싸움을 붙여놓은 다음 손님들을 부르는 것. 사업은 대박난다. 비뚤어진 방식이긴 하나, 어쨌건 웰스에게 충격을 선사하는 데는 성공한다.
물론 사업 자체는 120% 사기다. 게다가 미래의 전투 관광이라니, 전쟁을 눈요기로 삼는 선정적인 아이템이라 별로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어떻게든 운명을 바꿔보려는 의지의 인간들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을 저세상으로 보낸 남자는, 시간여행을 통해 연인을 되살려내려 한다. 또 보수적이고 지루한 19세기 말이 싫은 여인은, 아예 미래로 달아날 작전을 세운다. 여기에 웰스가 <타임머신> 원작자로서 어쩔 수 없이 이들 모험에 끌려들어가, 직접 모험도 하고 사랑에 빠지고 위험상황을 해결한다. 역사와 로맨스와 스릴러가 고루 섞인, TV드라마풍 퓨전소설이나 핵심엔 웰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다. “당신의 상상력이 한 사람을 구했어요.” 이 낭만적이고 따뜻한 소설에 힘입어 긍정적인 문장 하나 덧붙이자면, 200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우린 아무도 시간여행을 할 수 없지만 대신 수많은 평행우주를 상상하며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