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제작자 스콧 루딘은 불같은 성질로 유명하다. 특히 그 아래서 일하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의 보좌진들은 매일, 그리고 24시간 내내 대기 상태여야 하고 통화 불가 지역인 뉴욕의 지하철을 타서도 안된다. 한 비서는 그가 보려던 공연 티켓을 사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는데 차라리 이건 다행인지 모른다. 화가 나면 주변의 물건을 손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기로 유명한 그이다 보니 행여 오스카 트로피라도 집었다가는…. 미국 인터넷뉴스인 <고커>가 그를 ‘최악의 보스’로 꼽은 것도 이해가 된다. 문제는 이 폭군이 대단한 능력자라는 사실이다. <디 아워스> <데어 윌 비 블러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머니볼>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등등 숱한 문제작을 제작했고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온, 손꼽히는 프로듀서란 말씀. “그는 영화를 먹고 영화를 마시고 영화 안에서 잔다”는 파라마운트의 전 사장 셰리 랜싱의 말처럼 엄청난 일중독자로도 유명하다. 그러니 그의 부하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그래도 일은 못하는데 부지런하기만 한 상사보다는 낫잖아요).
어쩌면 영화 프로듀서 또는 제작자로 살아간다는 건 일중독자가 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한편만 놓고 봐도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개발해 투자를 받고, 감독과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배우를 캐스팅하고 스탭을 고용하며 현장과 후반작업을 관리하고 개봉을 챙겨야 하니까. 게다가 훗날의 ‘먹거리’를 위해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세상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둬야 하며 함께 작업할 (가능성이 있는) 감독과 배우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미국 인디영화의 대모 크리스틴 바숀은 감독이 아닌 프로듀서가 된 이유에 대해 “내 두뇌는 17가지 일을 동시에 생각하도록 조직된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만큼 프로듀서가 다종다양한 일을 멀티태스킹해야 한다는 뜻일 거다.
투자사, 감독, 배우의 힘겨루기 속에서 존재가치마저 위협받는 게 한국 프로듀서의 처지라면 노동강도가 할리우드에 비해 적을 리 없다. 제작환경이 예전만 못하니 제작자가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의 목록도 늘어났을 것이고 돈 들이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몸으로 때워야 할 일도 많아졌으리라. 주목할 만한 5명의 제작자를 다룬 이번 특집기사는 우선 그들을 널리 소개하기 위한 것이지만 한국 프로듀서들의 노고에 대한 격려, 지지, 응원 차원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들을 비롯해 일중독에 걸린 한국의 제작자들이 계속해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를 희망하는 의미도 있다. 보다 적극적인 시나리오 개발과 아이템 탐구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본이 필수적이기에. 제작자와 프로듀서의 건투를 빈다.
아 잠깐, 제작자 여러분, 아무리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직원들에게 재떨이는 던지지 말아주세요.